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는 유명하다. 강원도 인제의 자작나무숲은 치유, 여행이 화두인 요즘 인기 관광지가 됐다. 황량함이 느껴지는 겨울에도 하얀 줄기는 소복이 쌓인 눈과 함께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은사시나무도 하얀 수피 때문에 겨울에 눈에 띄는 대표적인 나무이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찾아간 뒷산에서 파란 하늘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은사시나무를 보았다. 바닥에 넓게 떨어진 검은 나뭇잎으로 은사시가 있음을 알아차렸고, 고개를 들자 흰 수피에 마름모로 터진 모양의 줄기를 발견했다. 시선을 점점 위로 하자 푸른 하늘에 굵게 뻗은 가지가 시원했다. 잎은 다 떨어져 발밑에 있지만 겨울 숲의 주인인 듯 그 모습이 참으로 듬직하다. 나무특성상 딱따구리가 둥지를 만들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딱따구리는 우리 뒷산에서 최소 2종은 볼 수 있다. 은사시나무를 발견한다면 딱따구리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시나무는 잎자루가 길어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잎이 앞뒤로 잘 흔들린다. 그 모습 때문에 ‘사시나무 떨 듯하다’는 말이 생겼다. 은사시나무는 이 ‘사시나무’와 유럽종인 ‘은백양’의 잡종이다. 사시나무처럼 은사시나무도 잎자루가 길어 바람이 불면 잎이 많이 움직인다. 숲에서 키가 20m에 달하는 이 나무를 무심코 지나칠 순 있겠지만 바람에 사락사락 거리는 소리는 발목을 잡을 것이다. 또 플라타너스만큼이나 큼직하게 자란 은사시나무 가로수 길을 만난다면 하얀 수피와 쭉쭉 뻗은 가지, 바람에 흔들리는 잎을 보게 될 것이다. 필자도 용인시 처인구의 어느 길에서 굵은 은사시나무 가로수를 보고 가슴이 뛰었던 적이 있다.

이른 봄, 버드나무의 하얀 솜뭉치 같은 열매처럼 은사시나무도 그런 열매를 날린다. 한때 사람들은 그것을 눈병을 일으키는 꽃가루로 잘못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로 코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은 인상을 남길 리 없다. 결국 베어지는 일이 많았는데 이런 경우만 아니라면 볼만한 은사시나무 가로수는 전국에 많았을 것이다.

1970년대 한창 나무를 조림할 때 은사시나무를 많이 심었다. 숲을 빨리 만들기 위해 생장이 빠른 식물을 심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잎갈나무,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 은사시나무가 대표적이었다. 그로부터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아까시나무는 꿀을 얻는 목적으로도 많이 심어져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일본잎갈나무는 침엽수 특징상 나무둘레를 키우기보다 위로 자란다. 대부분 가늘고 길게 자라 빽빽한 숲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리기다소나무는 큰 줄기에 나뭇잎 털이 숭숭 난 익숙한 소나무이다. 은사시나무는 조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나무가 흔하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남아 있다면 그 크기는 꽤 크다.

영월 한반도 지형은 은사시나무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남해안에 해당하는 부분이 맞은편 은사시나무 숲으로 가려져 보는 사람들마다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의 은사시나무를 모두 베어냈다고 하니 자리를 잘못 잡아도 크게 잘못 잡았다. 지금도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하얀 수피의 나무들을 빽빽이 심은 것을 볼 수 있다. 가지 끝이 붉은 것이 자작나무처럼 보이는데 가끔 은사시로 보이는 것도 있다. 여전히 사방공사에 많이 쓰이는 듯하다. 잘 자라고 보기 좋은 이 나무가 잠깐의 말썽으로 더 이상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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