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환경이나 생태를 다루는 신문에선 특종이 터졌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선정해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되고 있는 구상나무가 소백산에서 100여 그루 자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그것도 제한된 지역에만 살고 있는, 더구나 지구온난화로 기온 상승이 이어지면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구상나무로선 살 수 있는 지역이 더 확장됐다는 소식이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의아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어? 우리 아파트 화단에 구상나무 있던데”, “우리 학교 정원에도 있어요.” 맞다. 아름다운 자태 덕분에 크리스마스트리용으로 유명세를 치른 구상나무는 그 덕에 많은 품종 개량을 거쳐 높은 산꼭대기뿐만 아이라 평지에도 살 수 있게 됐으며 남부지방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용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됐다.

만약 공원이나 정원에 나갔는데 겨울에도 푸르른 상록 침엽수를 보게 되고 잎 앞은 짙은 초록색인데 반해 뒷면이 하얀빛, 은빛으로 빛나며 잎 끝이 뾰족하지 않고 아기 엉덩이마냥 가운데가 쏙 들어간 볼록볼록이고, 잎이 가지에 붙는 것이 한쪽으로 기울거나 편편하지 않고 사방으로 둥글게 붙어있다면 구상나무일 확률이 크다. 이와 비슷한 나무로 전나무가 있는데 용인의 시나무로 지정돼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전나무 잎 끝은 따가운데 비해 구상나무의 잎 끝은 둥글어 따갑지 않다. 구상나무를 만나면 꼭 나뭇가지를 살짝 뒤집어 잎들의 뒷면을 보길 바란다. 선명한 초록색과 은빛으로 대비되는 색감은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사실 이 은빛은 잎 뒷면에 있는 숨 쉬는 구멍으로 ‘기공조선’이라 부르는 하얀 줄이다. 다른 나무에 비해 유난히 희고 선명해 이러한 느낌을 선사한다.

구상나무 잎

구상나무의 이름을 유추하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열매에서 바늘 모양의 돌기가 갈고리처럼 꼬부라진 모양을 닮았다 해서 갈고리 구(鉤)자를 써서 구상나무라는 이름이 됐다는 설과 ‘열매가 하늘을 보는 나무’라는 뜻으로 열매를 뜻하는 한자 구(毬)와 위를 뜻하는 한자 상(上)을 더해 만든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구상나무의 최대 자생지인 제주도 말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푸른 제주 앞바다에 사는 보라색 성게를 닮은 열매와 잎을 가진 나무를 보며 그 보라색 성게의 이름 ‘쿠상(또는 쿠살)’에서 ‘쿠상낭’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낭은 나무를 뜻하는 제주말이다. 그것이 변해 현재 구상나무가 됐다는 설이다. 무엇이 가장 유력한지는 학자들마다 다른데 이는 구상나무의 존재 자체가 워낙 알려지지 않았고 기록이나 문헌에도 나와 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 옛 이름에 대한 근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논란의 여지 속에서도 구상나무는 한자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오롯이 한글 ‘구상’이다. 그런 면에 있어 가장 오랫동안 가깝게 구상나무를 봐온 제주 사람들에게 한표를 던지고 싶은 필자의 사심이다.

구상나무에도 꽃이 핀다. 다른 소나무과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꽃잎이 따로 없어 화려한 꽃을 기대하는 선입견으로 알아보지 못할 뿐 봄이 무르익을 즈음 빨강, 노랑, 자주, 분홍 등 다양한 색의 수꽃과 짙은 자줏빛의 암꽃이 핀다. 열매는 자주, 검정, 빨강, 초록 등 다양한 색에 솔방울이나 잣방울처럼 생겼는데 더 길쭉한 모양에 벌어지지 않아 단단해 보인다. 이 열매들이 나뭇가지 위에 달려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모습을 보면 늠름한 기상이 서려보이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마치 하늘 가까이 사는 구상나무기에 하늘의 이야기를 전하듯, 하늘에 이야기를 고하듯 하늘과 땅의 전령사인 듯 서있다. 그런데 요즘 그 열매를 보면 촛불이 생각난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는 우리의 것들을 빼앗아 자기 뱃속을 채우고 있었다. 뒤늦게 그것을 바로잡고자 촛불을 들었다. 구상나무도 촛불을 든다. 열매를 곧추 세우고 말한다. ‘다시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일을 만들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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