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크리스마스트리 바꾸는 거지? 집에 있는 건 너무 오래 됐어.”

아들은 이제 자기 키보다 작아진 플라스틱 크리스마스트리가 싫증 났는지 졸라댄다. 예전에 외국 영화에서 크리스마스라 해서 아빠가 숲에 들어가 그럴듯한 나무를 잘라와 형형색색 구슬을 달며 장식을 하고는 행복한 웃음을 짓는 가족이야기를 보며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만약 정말 그게 현실이 돼 뒷동산에 올라 나무를 잘라 온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보름 남짓 장식용으로 쓰고 버려지기엔 나무 생명의 가치가 존엄하다. 그래서 올해도 아들을 달래본다. 그냥 있는 플라스틱 트리를 쓰자고.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이라 맘에 걸리지만 그래도 7년 동안이나 우리집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전담해온 트리에 감사하다.

실제로 외국에선 살아있는 나무를 잘라서 장식을 하고 기간이 끝나면 땔감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독일에서 연말 나무에 장식을 하며 소원을 빌고 감사하는 풍습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후 유럽 전역에 퍼지며 기독교와 맞물려 크리스마스 문화로 자리 잡아 전 세계로 퍼지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종교적 의미를 넘어서 연말이라는 분위기와 결합돼 산타할아버지와 크리스마스트리는 최고의 문화 아이템이 됐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용 나무로 구상나무와 전나무를 뽑는다. 특히 구상나무는 ‘코리아전나무’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름이 말해주듯이 구상나무의 원산지는 코리아, 우리나라이다. 어떻게 우리 나무가 세계적 명성을 떨치게 됐을까? 그 이면을 알게 되면 세계적 명성이 마냥 기쁘지 않다.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우리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을 때 외세에 의해 주권을 빼앗긴 대표적인 사례다.

구상나무는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사는 곳이 몇 개의 산 정상부로 한정돼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질 못했다. 오히려 이 나무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미국인 식물학자 윌슨이었다. 제주도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를 본 윌슨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반도에만 사는 나무라고 1920년 식물학회에 보고하면서 구상나무는 세계 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그러면서 많은 외국인들이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종자를 가져가게 됐고 이후 많은 품종개량을 거치면서 전문 크리스마스트리용으로 재배됐다. 그 결과 우리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산업적, 경제적 소유권은 외국에서 행사하게 됐다. 소위 말하는 로열티를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정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해야 하는 나무이다. 이제라도 관심을 갖자는 것이 어색하지만 어쩔 수 없다. 늦었다고 후회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때라는 말처럼 말이다.

구상나무는 소나무처럼 가늘고 긴 잎이 사계절 늘 푸르게 달려있으며 잘 자라면 20미터나 되는 큰 나무로 자란다. 대부분의 침엽수가 그렇듯이 차가운 기온에 익숙한 나무다. 구상나무가 우리 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마지막 빙하기 때란다. 마지막 빙하기 때 추운 날씨를 타고 구상나무는 제주도까지 내려가 전국적으로 살았지만 빙하기가 풀리자 점점 기온이 올라가게 되고 구상나무는 기온이 높은 평지에는 살 수가 없어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은 고산지역에만 살아남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구상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한반도의 여름 정도는 거뜬히 견뎌낼 수 있는 적응력을 갖게 됐다.

현재 구상나무는 한라산과 무등산,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등 남부와 중부지방의 높은 산에만 살아남았다. 최근에 소백산에서도 구상나무 1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는 기쁜 소식이 있었다. 문제는 지구온난화로 갑작스레 기온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라산과 지리산의 구상나무는 벌써 많은 개체가 하얗게 말라 죽어버렸다. 구상나무가 살 수 있는 땅은 점점 산꼭대기로 좁아지고 언젠가 산꼭대기에서도 쫓겨나면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선정한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되고 있으나 멸종이라는 최악의 단계를 밟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모두가 행복을 바라는 크리스마스에 최고의 별을 달고 있는 구상나무에게도 행복한 은총이 가득한 크리스마스가 되길 바라본다.(구상나무 이야기는 다음회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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