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대한민국 정부 로고 디자인 개발에 최순실 씨가 개입됐다는 의혹이 나왔다. “태극무늬를 넣어 만들라”는 최 씨의 주문이 있었단다. 그녀의 개입 여부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지난 3월부터 대한민국 정부 주무부처부터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수목원까지 모든 로고는 태극문양의 마크로 바뀌었다. 여기서 주목해볼만한 점은 국민들의 반응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국정농단 사태를 접한 이후 정부의 획일화된 로고가 ‘소름끼친다’라고까지 표현했다. 정부 로고가 처음 공개됐을 때와는 다른 반응이다. ‘깔끔하고 눈에 띈다’, ‘통일성이 있어 좋다’고 했던 국민들의 마음은 최 씨 개입 의혹을 듣자 돌아서 버렸다. 그 상징의 가치와 추진배경에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용인시 심벌마크 자리를 마음대로 차지하고 있는 시정비전 마크는 어떤가? 심벌마크 대신 시정비전이 용인시를 대표하는 로고로 사용돼도 되는 것인가? 그 상징의 가치와 추진배경이 과연 적합한 것인가?

맨 처음 제보를 받고 취재를 시작할 때만해도 이번 문제가 그간 시장이 바뀔 때마다 제기돼 왔던 ‘시정비전 남발’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취재를 계속하면 할수록 이번 문제는 이로써 끝날 일은 아니었다.

멀쩡했던 시청사 심벌마크가 깨진 채 옥상에 방치돼 있었다. 시청사 게양대의 시기는 내려졌고 지역의 주민센터 등의 기관에 붙어 있던 심벌마크는 무차별적으로 떼어졌다. 뗄 수 없는 곳곳의 심벌마크는 시정비전 마크 스티커로 가려졌으며 시청에서 사용되는 모든 공문서에는 시정비전만 쓰여졌다. 일부러 심벌마크를 제거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바꿀 수 있을까 의문까지 들었다.

확실한 것은 책과 ‘사람들의 용인’을 넣은 시정비전 마크는 용인시를 대표하는 상징마크는 될 수 없다. 이는 용인시민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시 조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적합한 절차와 시민 의견수렴을 거쳐 어렵게 만들어지는 게 심벌마크다. 따라서 임의대로 상징마크를 떼어내고 시정비전을 넣는 행위는 용인시 대표 상징물을 훼손한 명백한 조례 위반이다.

정찬민 시장은 지금까지 상징물 훼손에 대해 “다 알지는 못했다”는 등의 애매한 답변으로 책임을 회피해왔다. 하지만 ‘100만 대도시에 맞춘 상징물을 재검토하라’는 주문을 2월 시정전략회의에서 정 시장이 했고, 이에 따라 기흥구가 몇 주 동안 눈에 보이는 모든 심벌마크를 없앴다는 사실에서 정 시장의 심벌마크 삭제 논란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정 시장이 꿈꿨던 ‘사람들의 용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시민들의 눈에 띄는 많은 곳에 심벌마크를 지우고 시정비전을 넣으면 정말 그렇게 되리라 믿었던 것일까?

용인시에는 ‘사람들의 용인’을 만들기 위해 시장이 정작 신경써야 할 더 많은 과제들이 산재해있다. 가족과 이웃의 무관심 속에 홀로 손녀를 키우다 함께 삶의 연을 끊으려했던 할머니, 연료 값이 없어 방에서 임시 난방 기구를 쓰다 죽어간 여성 등 최근 복지사각지대에서 드러난 문제점만 해도 끝이 없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정확한 수를 파악해야 한다는 기자의 질문에 “인력이 부족해 어렵다”는 답을 했던 용인시다. 한창 생리대 문제로 전국이 떠들썩할 때도 “경찰대부지 활용 건으로 윗선이 바빠 지원에 대한 지시는 내려오지 않았다”고 답변했던 용인시다.

‘사람들의 용인’을 정말로 그토록 간절히 만들고 싶다면 시민의 혈세로 일하고 있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은 간판을 교체하고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 아니다. 수억을 들였고 앞으로도 또 수억을 들여 홍보를 하는 정성으로 시민 단 한 사람의 어려움이라도 줄이기 위해 나서는 게 진짜 ‘사람들의 용인’이 되는 길이 아닐까.

시민들은 어쩌면 용인시 심벌마크에는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관심을 채 가질 여유조차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심벌마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시정비전이 여전히 달갑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관심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민들은 사라진 심벌마크의 수만큼이나 많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