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배나무 열매

처음 팥배나무를 본 것은 숲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찾은 서울의 북한산 자락에서다. 익숙한 ‘팥’과 ‘배’가 모여 이룬 팥배나무란 이름에 웃음이 나왔지만 처음 본 나뭇잎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달걀과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잎이었는데 사실 그 정도 크기와 모양을 가진 나뭇잎은 냇가에서 둥근 돌을 찾는 것처럼 흔하고 흔하다.

그런데 잎자루에서 뻗어나간 잎맥이 어찌나 선명하게 새겨있는지 한번만 봐도 잊히지 않을 만큼 강하게 각인됐다. 더구나 ‘이중거치’ 또는 ‘겹톱니’라 해서 나뭇잎 가장자리가 볼록볼록 뾰족뾰족 산세 마냥 솟아있는데, 그 산 하나하나도 또 볼록볼록 뾰족뾰족 작은 산이 모여 있다. 선명한 잎맥과 뾰족뾰족 가장자리의 특징만으로 팥배나무를 알아볼 수 있게 됐다. 그 후 팥배나무는 필자에게 관심나무가 됐다.

관심이 생기면 알아보기 쉬운 법. 북한산 국립공원에나 있을 나무인줄 알았던 팥배나무는 알고 보니 필자가 살고 있는 용인은 물론, 전국 어느 산을 가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나무였다. 그래서 깊게 새겨진 잎맥의 팥배나무 잎을 볼 때면 한번 씩 반가운 손짓으로 쓰다듬고 가는 사이가 됐다.

그러다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문턱쯤 되면 팥배나무에 꽃이 핀다. 작고 하얀 꽃이 무리지어 달리는데 초록색 잎과 어우러져 화사하고 아름답다. 이때 이름이 왜 팥배나무인지 단서가 하나 제공된다. 바로 꽃 모양이 배꽃과 닮아서란다. 이 꽃을 보고 노란 배라는 열매를 생각하며 기대에 부풀겠지만 가을이 되면 헛웃음이 나오고 만다. 앵두보다도 작은 빨간 열매가 달린다. 그래서 팥배나무구나. 팥만 한 배라서. 사람은 커다란 배를 먹을 수 있으니 작은 팥배는 자연에 양보토록 해야겠다.

잎과 꽃과 열매에 대해서 알았으니 이제 팥배나무에 대해 웬만큼은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가을 산엘 올랐다. 우연찮게도 요즘 오르는 산 정상이 모두 바위가 드러나 있는 바위산이었다. 그런데 그 바위틈마다 작은 나무들이 살고 있었다. 순간 마음이 먹먹해져왔다. 내가 다 안다고 무심히 지나쳤던 팥배나무가 산꼭대기 좁은 바위틈에서 뿌리를 내리고 꿋꿋이 자라와 열매를 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사람이 양보한, -사실은 먹을 만하지 못하다 해서 지나친- 열매를 작은 새는 맛있게 먹고 힘내서 산꼭대기까지 날아와 바위에 앉아 잠시 쉬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소화되지 못한 씨앗을 똥으로 쌌을 것이다. 아니면 산봉우리를 날아서 지나며 하늘에서 씨앗을 떨어뜨렸을 수도 있다.

그렇게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이 싹 터 가지를 뻗으며 햇살을 맞이하고 척박한 바위틈에서도 뿌리를 내려 자신의 몸을 키워왔을 것이다. 바람 강한 산꼭대기 바위틈에 있는 바람에 키를 많이 키우지도 못했지만 튼실한 가지만은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렇게 맺은 열매는 붉은 색이 아주 진하게 배어 있었으며 겉에는 하얀 분이 뽀얗게 덮혀 있었다.
그렇다고 팥배나무가 바위산만을 고집하는 나무는 아니다.

팥배나무는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는 나무로 기름진 땅에서는 몸을 불리고 키를 키워 15미터나 자랄 수 있으며, 척박한 땅에서는 그 나름대로 성장의 이력을 보인다. 그러나 공해에는 약한 편으로 공기가 안 좋은 도심가에서는 보기 힘들다. 힘들게 먹고살지언정 그래도 더러운 숨은 못 쉬겠다는 팥배나무다. 그래서 도시에 팥배나무를 심어놓고 공해의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식물로도 키운다 하니 공기가 깨끗해져 팥배나무가 잘 자라는 도시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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