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은 대통령중심제를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민주주의 국가들이다. OECD 국가 중에는 미국과 프랑스, 멕시코, 한국 등만이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가들은 1인에 권력이 집중되는 대통령제보다 다수에게 권력이 분산되는 의원내각제를 선호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 모두 현재 대통령 때문에 격변을 겪고 있다. 미국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트럼프가 대통령의 권좌에 올라, 많은 미국인들을 그야말로 ‘멘붕’ 상태로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의 권력남용과 부정부패가 믿기 힘들 정도로 악랄하고 광범위해서 많은 국민들이 ‘멘붕’ 상태에 빠져있다.

박근혜와 트럼프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유권자 다수의 합법적 지지를 받고 (압도적인 표차는 아니었지만) 대통령 권좌에 올랐다. 트럼프의 경우,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미국 전체 득표수에서는 200만표 뒤졌지만, 당선 여부를 결정하는 각 주의 선거인단 득표수에서는 289대 218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1577만표를 획득해 1469만표를 얻는데 그친 문재인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아버지 덕을 크게 입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배경에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이 컸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로부터는 대통령의 딸이란 점 외에는 국가적 지도자로서 내세울만한 새로운 식견이나 업적을 찾기 힘들었다. 트럼프는 아버지가 물려준 뉴욕 시내의 부동산 사업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기업가 반열에 올랐다.

두 사람 모두 소위 ‘묻지마 지지층’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고향인 영남지역을 지지 기반으로, 아직도 박정희 시대의 향수에 젖어 있는 고령층에서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는 세계화 경제시대에서 낙오된 저소득 저학력 백인층의 높은 지지를 기반으로 당선됐다. 덕분에 미국 중서부와 남부지역 선거인단 표를 싹쓸이 했지만, 고향인 뉴욕주에서는 클린턴에게 20% 가까운 득표율 차이로 패배했다.

두 사람 모두 보통 사람이나 보통 정치인과는 다른 독특한 화법을 사용한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유명하다. 자신과 관련된 얘기를 하면서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혹은 남이 얘기를 하듯 말하는 방법이다.

반면 트럼프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대중적 지지를 확보했다. 소수인종이나 외국인을 공격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해댔다. 속으로 그런 마음이 있지만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 입을 열지 못한 많은 미국인들에게 트럼프는 솔직하고 용기 있는 정치인으로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두 사람에게 기대하는 지지자들의 바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은 국가 주도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리더십을 기대했다. 비록 부모가 모두 비명횡사하고, 정상적인 성장과정도 거치지 못했고, 평범한 가정생활도 꾸리지 못한 사람이지만, 혈혈단신 미혼의 여성으로서 부정부패나 사리사욕을 차리지 않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리라 유권자들은 믿었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미국 유권자들은 그가 자신들의 곤궁한 경제상황을 개선시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의 공약대로 중국산 저가상품의 수입을 제한하고,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쫓아내고, 동맹국들에게 방위비를 부담시키면 생활형편이 나아지리라 믿고 있다. 억만장자이니 금품 로비나 특혜 지원과 같은 부정부패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면 그의 공약대로 미국이 다시 위대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반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한국의 유권자들은 허탈해 하고 있다. 기대는 배신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자신들의 선택을 자책하는 유권자들도 적지 않다. 트럼프를 선택한 미국인들도 머지않아 한국 유권자들과 비슷한 후회를 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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