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간 결석(?)했던 경안천을 걸었다. “여보 우리가 안 본 사이 이렇게 물이 많이 줄었네요. 저기 보세요. 여기는 너무 가물어 물 흐름이 많이도 가늘어졌네요. 우리가 가 있었던 저 남쪽은 비가 억수로 내려 침수된 집도 많았다는데…” 앞서 가던 아내가 하는 말이다. 들으면서 하늘을 본다. 너무도 맑고 파랗다.

경안안 아랫길의 운동장을 지나니 항상 들려주던 물막이 보를 넘어 온 물소리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하늘로 솟구쳤다간 내 몸에도 와 달라붙는다. 그동안 못 들었던 물소리를 들으니 마음과 몸이 괜스레 한결 가벼워진다. 사람들이 산과 물을 가까이 하면 젊어진다던 말이 헛말이 아니다. 시청 쪽을 알리는 파랗고 둥근 표시판을 보며 주변을 돌아본다.

그토록 파랗고 싱싱하며 극성 떨며 생을 구가하던 갈대와 억새, 버들, 단풍나무, 뽕나무며 바라기 풀들을 거느리고 가을이 한가운데 왔음을 알리는 듯 모두 키를 낮추고 꽃술들을 날리며 누렇게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세시기(歲時記)를 보면 온갖 생물들은 자연의 뜻에 따라 생(生) 활(活) 소(消) 멸(滅) 하는 법. 풀 나무 역시 봄에 싹 틔워 자라게 해 꽃피우고 가을엔 열매를 맺게 하다간 단풍으로 옷까지 갈아입히는가 싶더니 끝내는 시들어 말라 죽게 해 흙속으로 거둬 간다는 것. 이런 자연의 섭리, 아니 힘 앞에 우리 호모사피엔스들도 순응해야 하고 왕후장상도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못한다는 진리를 배운다.

이래 저래 잠깐 자연 속 삶의 철학에 취해보며 더 걷다가 수막보가 멀리 보이는 앞 보를 넘어서니 사정이 확 달라졌다. 물이 잦아들어 바싹 말라 강바닥이 들어나 펄이 보인다. 가까이 가본다. 사실 이곳도 다른 새고지나 보던지 보처럼 얼마 전까지 만해도 하천 가득히 물이 흘러 바닥이 안보였다. 길게 위 아래로 500미터쯤 되는 칸이다. 물 흐름 폭이 좁아지면서 물 따라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들어 물속을 오가며 먹이 찾기에 분주하다. 물 빠져 들어난 펄 위로 나타난 돌 자갈들도 누런 흙빛을 안고 물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비록 물고기와 달리 무생물이긴 해도 연민의 정이 간다.

순간 바보스러운 생각으로 “제발 이 경안천도 항상 강안 가득히 물이 흘러내리게 해주소서” 하고 빌다간 20년 전 가본 캐나다 밴프시의 시내를 가르 지르는 강물이 강둑 넘치게 벙벙하게 흐르는 풍요로운 광경이 파노라마 되어 온다. 쌓인 눈이 녹고 다시 눈이 내려 쌓이는 만년설산 록키를 가진 이 나라가 부러웠다.

정말 이대로 며칠만 가면 자질자질 잦아드는 이 물도 발원지인 용해곡 해발 400여 미터 상봉 문수샘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확 줄어 바짝 말라 마른 펄이 된다면 흙먼지만 날릴 것 같다. 걱정이다. 누군 이런 것을 기우라고 한다지만 “너희들 어쩔테냐? 도망갈 길은 찾아 놓고 먹이 찾기에 정신 파느냐? 너희들이 물 많아 타고 올랐던 그 때처럼 저 위쪽 보에서 물이 넘어오지 않으면 어떻게 물 찾아 옮겨 가겠니, 위 아래가 이미 막힌 것 같던데. 아니면 이대로 하늘에서 비를 왈칵 쏟기만 기다리다가 기적이 안 일어나면 너희들은 꼼짝없이 이 자리에서 말라 죽을 텐데, 걱정 되는구나” 하고 듣건 말건 나 홀로 중얼거리면서 앞을 보니 항상 정해놓은 걷기 반환점이 보인다.

한 시간 남짓 걸은 셈이다. 땀방울이 등과 가슴에서 작게 굵게 인사를 한다. 쉼터 의자에 앉아 본다. 오가며 봐온 군데군데 마련된 쉼터 의자며 그늘 막은 시청 나리들 시민들의 복지행정을 위한 하념(下念)의 덕이고 ‘사람들의 용인’ 캐치프레이즈는 담배꽁초, 과자봉지, 휴지 한장 비닐조각, 껌 껍질, 헌 신문지 뭉치 등을 보지 못하게 말해준다. 고마운 분들이다.

하지만 이 나리들도 비를 많이 내리게 해 경안천 안의 물이 강둑을 넘나들게 하는 힘을 가진 자연의 지배자는 아니다. 그저 능력의 한계가 있어 날마다 잦아드는 경안천물을 어쩌지 못할 것이고 물속에서 퍼덕거리고 물 달라고 소리 없이 눈만 깜박대는 물고기들의 바람을 이뤄주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그저 “위대한 자연이여!” 하고 탄성을 토해내며 내일도 여기를 걷다 보면 좁아진 강바닥이 더욱 훤히 보일 것이다. 헤엄칠 마당이 더욱 좁아진 물속에서나마 등을 물위로 보이며 살기 위해 먹이를 찾고 있을 물고기에게서 생존의 본능을 또 한번 배워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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