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안 증상이 발생한다. 사고나 천재지변 등 생명을 위협하는 경험을 하거나 피해를 볼 경우 공포감과 함께 위기 상황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비슷한 상황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런 현상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불리고 있다.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많은 국민이 충격을 받게 돼 사회 전체가 불안이나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 최근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에 이어 경제, 정치적 사건 등 상황은 국민 전체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재난을 겪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불안과 무력감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해소되지만 일부에서는 수개월 이상 지속돼 사회생활에 많은 장애를 주기도 한다. 재난 당시와 유사한 상황을 떠올리면 분노나 슬픔을 느끼며 회피하기 위해 사회활동을 축소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 참을 수 없는 분노나 과민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재난 상황에서 생존 자체가 중요했던 근대 이전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상황이라는 개념 자체를 가지기 힘들었다. 전염병이나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던 시절이니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생존자들이 여러 불안 장애에 시달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대 한의서인 <황제내경>은 인간의 감정을 7가지로 구분해 즐거움, 화남, 생각함, 슬퍼함, 두려움, 놀람으로 나누고 각각 인체 내부 장기가 주관한다고 생각했다. 즐거운 생각은 심장, 슬픔은 폐, 화남은 간이라는 형식이다. 각각 장기에 정신이 분산돼 있고 이것을 ‘기’라는 개념이 서로 연결해 준다고 믿었기에 신체 내부 장기의 이상이나 손상이 심리 상태와 관련돼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뇌는 단지 특이한 장기로 생각했다. 뇌와 각 장기들은 가상의 ‘기’로 심장 등과 연계돼 있는데 이런 기가 정체될 심리 상태에 장애가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동의보감에 불안장애와 유사한 경계증이 기술돼 있는데 놀란 상태로 인해 심장 박동수가 증가한 현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콩팥이나 위에 감정이 있어 공포가 발생한다고 믿기도 했으며 피가 부족해서 생긴다는 생각과 함께 기가 정체돼 불안과 공포가 형성된다고 상상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증상들이 기록돼 있는데 현재의 외상 후 스트레스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신을 주관하는 장기는 뇌가 아니고 다른 장기였다는 생각은 서구에서도 같았다. 사랑의 표식인 하트가 심장을 표시하는 것은 심장에 정신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당한 의학 지식을 가졌던 고대 이집트인은 미라를 만들 때 마음이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한 심장은 소중히 보관한 반면 뇌는 필요 없는 부분으로 간주해 버렸다.

기원전 5세기 히포크라테스는 감정과 정신을 담당하는 장소를 뇌라고 주장한 반면, 비슷한 시기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뇌는 혈액을 식혀주는 곳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갈레노스가 뇌신경계를 관찰하면서 뇌가 정신을 담당하며 뇌를 둘러싼 액체들이 감정을 조정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은 천년 넘게 믿어왔다. 몸을 구성하는 체액인 혈액, 검은 담즙, 황색 담즙, 타액은 불균형 때문이고 이를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쁜 피를 뽑아내면 심리상태가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시행된 사혈법은 정신질환에서도 당연히 사용됐다.

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전투 이후에도 여러 불안감을 호소했는데 고대 문학 작품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배신과 상실로 인해 귀향을 하지 못하는 만성적 외상 후 스트레스 상태가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외상 후 스트레스는 19세기가 되서야 의학적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일부 의사들이 사고나 전쟁 이후 회복된 환자들이 피로, 불안감, 우울증을 호소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당시에는 외상에 의한 신경증 정도로 생각했다.

미국 남북전쟁 때 흉통이나 호흡곤란 등 불안 장애를 호소하는 병사들이 증가했는데 수많은 검사를 시행해도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내과 의사였던 다코스타는 전투의 충격으로 심약한 병사들이 심리적 불안 상태를 일으킨 것으로 생각하고 학계에 보고했는데 이를 ‘군인의 심장’ 혹은 다코스타 증후군으로 불리었다. 화약무기 발달로 전투 공포가 증가하면서 다코스타 증후군 환자가 늘어났다. 전쟁 규모가 커지고 참호전 양상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에 수백만 명으로 급증했고 ‘전쟁 신경증’으로 불리면서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입영 전에 심리 검사를 통해 상당수 심약하다고 생각되는 병사들을 걸러냈지만 여전히 많은 전쟁 신경증 환자가 발생했다. 모든 병사들에게서 전쟁 신경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의심에 여지가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각 국가들은 전투 후 병사들의 휴식과 정신 재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자연재해나 교통사고를 경험한 환자에서 전쟁 신경증과 비슷한 우울증과 무력감이 발견됐고, 1952년 처음으로 총체적 스트레스 반응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스트레스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우울감, 불면증, 무력감 등의 증상이 지속돼 일상 생활과 사회적 활동에 장애를 준다는 사실이 명확해지면서 1980년까지 사용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명이 확립됐다.

이후 스트레스 상황이 단기간 지속되는 급성형과 수년간 지속되는 만성형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뇌의 해부학적인 기능과 신경전달계가 연구되면서 약물을 비롯한 심리 치료 및 인지 치료 등 다양한 치료 방법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빠른 시간에 치료를 시작할 경우 효과가 좋아 장기간 고통받는 환자를 줄일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는 정신과 진료를 기피하는 사회적 편견이 존재해 적극적인 치료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9.11 테러 직후 많은 미국인들이 정신과 상담을 받았던 것처럼 최근 여러 재난 상황에 직면해 불안감, 무력감, 우울증이 생겼을 경우 가까운 지역 의료기관을 방문해 상담 치료를 받아 보는 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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