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자나무 꽃

‘이게 뭐였더라, 구면인 것 같은데….’ 식물을 공부하다보면 내가 실제로 본 식물인지 책에서 본 식물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구기자가 그런 식물이었다. 고향집 골목길에서 개망초와 강아지풀 사이에서 삐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꽃도 있고 열매도 달려있어 웬만하면 기억이 나야 하는데 답답하게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얼마 뒤 가족과 한국민속촌에 갔다. 그곳에서 그 알 듯 말 듯했던 식물을 또 만났다. 전에는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자라서 덩굴 같았는데 이번엔 밑둥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지는 모양의 키 작은 나무였다. 밭 가장자리와 길을 구분하는 용도로 심어 놓았는데 가시가 있고 줄기가 빽빽하니 산울타리로 쓰기에 좋아보였다. 이름표에 ‘구기자’라고 쓰여 있었다. 구기자는 6, 7월 한여름에 한번, 한두 달 후에 한 번 더 꽃이 핀다. 일 년에 두 번 꽃이 피는 식물이라 참 특이하다. 봄에 피었던 영산홍이나 제비꽃이 비슷한 기온의 가을에 피는 것은 여러 번 봤지만 구기자의 경우는 흔하지 않다.

구기자나무는 가시가 탱자나무(枸)와 비슷하고 줄기는 버드나무(杞)처럼 아래로 쳐져 자라는 모습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다. 두 글자를 합쳐서 구기(枸杞)라 하고, 이것에 열매(子)를 붙여 구기자라 불렀다. 오미자, 피마자, 탱자, 유자 등 이름에 ‘자’가 붙은 식물은 열매가 그 식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보여준다. 구기자는 이름에서 줄기의 특징과 열매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청양은 고추로 매우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구기자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재배한 곳도 청양이다. 구기자 생산량의 70%가 이곳에서 나며, 2000년부터 청양고추구기자축제를 열었다. 요즘엔 진도, 해남 등지에서도 구기자를 많이 재배한다. 고추도, 그보다 작은 구기자도 모두 사람들의 손으로 따야하는 것이니 농산물 수확기에는 청양사람들 허리 펴는 날이 손에 꼽히겠다. <본초강목>에 나오는 구기자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구기자나무 열매

“어떤 사람이 길에서 젊은 여자가 80~90살 돼 보이는 늙은이를 때리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그 여자에게 이 늙은이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 여자는 늙은이가 자신의 증손자인데 좋은 약을 줘도 먹지 않아 이렇게 늙고 병들어 벌을 주는 것이라 말했다. 그 여자에게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372살이라고 했다. 그 약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봄에는 천정, 여름에는 구기, 가을에는 지골, 겨울에는 선인장 또는 서왕모장이라 부르며 이것을 사철 채취해 먹으면 장수한다’고 했다.”

구기자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잘 자라는 식물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인삼, 하수오와 함께 한방에서 3대 명약으로 불린다. 중국 진시황이 즐기는 먹거리 중 하나였다고 하니 불로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구기자의 여러 효능 중 현재까지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은 피로회복이다. 만병의 원인을 다스려주니 명약 중 명약이다. 또한 눈을 밝게 하고 항산화작용을 하며 간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막고 손상된 간을 회복시켜 하루 한잔의 구기자차가 좋다고 한다. 식물은 약에 쓰이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모두 그 성분과 효과가 다르다. 몸에 좋다는 알약들을 쌓아놓고 먹을 것이 아니라 식물과 더 친해지고 볼 일이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