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나무와 모과

아이들이 뛰놀다 간 학교 앞 벤치 주위에 노란 은행잎이 소복이 깔려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에 낙엽이 구른다. 그 때 떠오르는 시가 있다. 김광균 님의 <추일서정>의 첫 구절인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프랑스의 번역시인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의 한구절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이다. 그 구절이 자꾸만 입가에 맴도는데 오래 전 글인데도 지금까지 낭송되고 떠오르는 것을 보면 문학이 갖고 있는 힘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랜만에 안도현 님의 시집을 펼쳐봤다. <모과나무>라는 시가 생각나서였다. 시를 읽으니 모과나무를 만나고 싶었다. 모과나무는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나무로 주로 중부 이남 지역에서 자란다. 전에 보았던 호암미술관의 모과나무를 찾아 나섰다. 고목인 모과나무엔 열매가 잔뜩 달려 있었다. 그 나무는 속이 비어 있었다. 그럼에도 열매를 맺으며 잘 자랄 수 있는 이유는 나무는 심재가 없어도 변재의 형성층만으로도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전시도 둘러보고 희원의 정취도 한껏 느끼고 돌아왔다.

이처럼 모과나무를 정원에 심은 이유는 모과 열매를 얻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늦봄에 피는 연분홍의 화사한 꽃이 예쁘고 오래된 줄기의 껍질이 비늘 조각으로 벗겨지면서 윤기가 흐르는 특유의 아름다움을 주며 운치를 더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옛 건축물에 모과나무를 이용한 곳이 있다. 지리산 화엄사의 구층암 승방이다. 구층암 승방은 100년도 넘었음직한 나무를 최소한의 가공만 거친 뒤 큰 기둥으로 세웠다고 한다. 줄기 표면의 아름다움이 고즈넉한 승방과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그곳에 들리고 싶다.

모과 열매는 향기로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떤 인공향이 흉내 낼 수 없는 천연향을 지니고 있다. 또한 벌레 먹고 못생긴 모과일수록 향기가 짙다고 한다. 식물도 상처가 난 자리에서 향기가 번져 나오는 것처럼 모과 열매도 그러한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어려움을 겪고 난 후 조금 더 성장해 있고 성숙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내면의 향기이다. 그 어떤 환경의 척박함을 겪지 않고 자라나는 온실 속의 화초보다 들꽃이 더욱 짙은 향기를 지닌 것처럼 말이다. 깊은 향기를 간직한 모과를 보며 쓴 글이다.

내 이름은 모과,
나무에 달린 참외라는 뜻이지요.
남들은 나를 보고 못생겼다고 말을 해요.
하지만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나처럼 향기로움을 간직한 열매가 있나요.
환한 등불이 되어 주변을 밝혀줄 수 있나요.
그러니 제발,
생긴 것으로 나를 평가하지 말아요.
겉으로 보이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이니까,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답니다.

글을 적고 보니 모과나무뿐 아니라 모든 나무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현실에 급급해서 잊고 살아가는 동심의 세계에 한발 더 다가가게 만들고 멀어져간 추억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눈을 감고 잠시 그 곳에 가면 마을 앞 커다란 정자나무를 만나고 뒷동산의 커다란 밤나무도 만나게 된다. 그것을 추억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밑바탕에 자연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살아왔고 성장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것을 잊고 살아온 것이다. 모과 열매의 향기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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