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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으면 새로움도 없다
  • 박서연(다통소 소장·수원대 사회교육원 타로 강사)
  • 승인 2016.11.0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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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 카드 13번의 이름은 ‘DEATH’(죽음)이다. 상담할 때나 타로 수업을 할 때 이 카드가 나오면 사람들의 90%쯤은 얼굴색이 변하며 “이 카드 안 좋은 거죠?”하고 묻는다. 그러나 죽음은 언제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신이 추수를 할 때 쓰는 낫을 들고 있는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 죽이지 않으면 살 수 없음을 뜻하는 상징이다.

아이가 죽어야 어른이 되고, 처녀가 죽어야 엄마가 된다. 새로운 형태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 전의 것은 사라져야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어찌 보면 삶 자체가 죽음이다. 어제의 나를 버리고 새롭게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지 않는다면 삶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간다고 말해도 되지만 멋지게 죽어간다고 말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13세의 아이들은 한창 사춘기의 반항을 한다. 당연한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데스카드는 새로운 나비로 변태하기 위해 애벌레의 모습을 버리는 시간을 말한다. 이혼을 원하는 내담자나 뭔가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데스카드는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것을 사람들은 절망이나 망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더 이상 지속하지 말고 어떤 식으로든 이제 정리하고 수확하라는 뜻으로 읽으면 된다. 나의 나쁜 습관과 안일한 생각, 관례에 매어서 더 이상 옴짝달싹 할 수 없을 때 죽음의 카드는 우리에게 새로운 탈출구를 만들어 준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결정의 순간을 사신이 마련해주는 것이다. 영원히 어린아이로 살며, 안식만이 있는 그런 삶은 없다.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발목을 붙잡고 있는 인연의 고리를 어떤 식으로든 끊어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세상과 새로워진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죽음의 카드는 새로운 능력과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토대가 된다.‘DEATH’는 과거와의 단절이다. 일의 끝이다. 그러면서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13은 저주의 숫자도 불행의 숫자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매일매일 행하는 망각과 단절과 청소의 작업을 의미하는 숫자이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간직하며 쌓아놓고 살아간다면, 아마 엉킨 실타래 같은 복잡한 인연과 어지러운 쓰레기더미 속에서 숨 막히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13번의 데스카드를 두려워하지 말자.

박서연(다통소 소장·수원대 사회교육원 타로 강사)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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