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나무 꽃

필자가 사람들에게 나무 이름을 알려줄 때 발음에 신경을 쓰게 되는 나무가 있다. 둥둥둥둥 치는 북도 아니고 영어로 책을 이야기하는 북(book)도 아니라는 우스개 소리를 하며 나무 이름을 각인시켜준다. 왠지 ‘부울’ 하고 발음하다가 끝에 ‘ㄱ’받침이 들어가게 혀를 긴장시키며 발음을 하려한다. 왠지 이 나무에겐 그래줘야 할 것 같다. 한글자이지만 쉬운 글자가 아닌 붉나무.
이름 그대로 가을이 되면 잎에 단풍이 들어 붉어진다. 처음 가을이 시작돼 단풍이 들기 시작할 때는 노랑이나 밝은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다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붉은빛이 진해지게 되고 마침내 불이 활활 타오르듯이 새빨개진다. 그래서 붉나무다.

붉나무는 옻나무과에 속하지만 독성이 없다. 옻나무라 하면 먼저 많은 사람들이 가려움을 먼저 생각한다. 옻이 오르면 가렵고 부어오르고 심하면 진물까지 난다고 하니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붉나무는 같은 옻나무과라 하더라도 옻이 오르지 않는다. 아주 예민한 사람은 반응을 보인다고도 하는데 아직 필자는 그런 사람을 만나진 못했다. 그러나 본인의 피부가 그러한 사람이라면 우선은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을 듯하다.

옻나무과에 속하는 또 다른 나무로 개옻나무가 있다. 옻나무는 중앙아시아의 티벳과 히말라야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자생하지 않는데, 옻이라는 특수한 산업을 위해 사람들이 심어 가꾼 것이 지금까지 퍼지게 됐다. 그런데 개옻나무는 우리 주변의 야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로 붉나무와 비슷해 여러 가지로 비교된다. 잎 모양도 여러 작은 잎이 모여 하나의 잎을 이루는 복엽이란 점도 비슷하고, 나무의 크기나 가지 뻗는 것도 비슷하다. 또 열매가 달리는 것도 비슷해 멀리서 보면 많이 혼동되는데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붉나무는 잎자루에 날개가 있다는 점이다.

붉나무는 잎이 아까시나무 잎처럼 여러 개의 작은 잎이 모여 있는 겹잎 구조를 갖고 있다. 잎과 잎이 연결되는 잎자루에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오리발의 물갈퀴처럼, 하늘다람쥐의 날개처럼 날개가 달려있다. 그래서 날개달린 잎자루만 기억하고 있으면 숲에서 붉나무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여름에 암수딴그루로 꽃이 피는데 약간 노란빛이 도는 하얀색으로 작은 여러 개의 꽃이 원뿔모양으로 모여 핀다. 그리고 나서 꽃이 지면 10월에 열매가 익는데 보리쌀보다 약간 큰 정도의 크기에 동그란 열매가 주렁주렁 많이도 달린다. 열매의 겉에는 흰색 가루같은 것이 묻어있는데 이 가루는 시고 소금처럼 짠 맛이 난다. 이 때문에 붉나무는 염부목이라고도 불린다.

바닷가도 아니고 산속에 이렇게 짠 맛을 내는 나무가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덕분에 옛날에 소금이 귀하고 비쌌던 시절 내륙지방이나 산골지방에서는 붉나무의 열매를 긁어모으거나 물에 씻어 베어 나온 짠 성분을 소금 대신 사용했다고 한다. 두부를 만들 때 간수로도 사용했다 하니 정말 대단한 나무다. 또한 연중 성장하는 나뭇가지가 비교적 곧고 길게 자라기 때문에 과거 농작물을 바로 세우는 지주목으로 많이 쓰였다.

붉나무 잎

붉나무는 한약재로 유명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붉나무가 가지고 있던 부분이 아닌 벌레로 인해 생채기가 나 부풀어 오른 상처를 약으로 쓴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진딧물과의 오배자면충이 어린 순에 기생해 벌레혹(충영)을 만드는데 이것을 오배자라고 한다. 본래보다 다섯 배가 커져 그렇게 불렀다니 참 재밌다. 오배자는 타닌이 많이 들어 있어 약용하거나 잉크의 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붉나무는 붉은 색 때문에 전통적으로 귀신을 쫓는 나무로 인식돼 왔다. 지팡이를 만들어 지니고 다니면 악귀로부터 보호해준다고 믿었으며, 외양간 근처에 심어 놓으면 소의 병을 막아준다고도 믿었다. 요즘같이 광우병이나 구제역으로 인해 농부님들의 근심이 큰데 목장 근처에 심어놓아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붉나무의 어린 가지를 말려 불에 태우면 폭음이 발생하는데 이때 소원을 빌면 이뤄지고 나쁜 기운을 막을 수 있다고 믿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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