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소기업을 말할 때 흔히 9988이라고 한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아라’라는 뜻이 아니라 기업체 수로는 우리나라 기업수의 99%이고 종업원 수로는 88%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경제적 비중으로 볼 때 중소기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주장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요즈음  중소기업하는 분들은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기업 강의를 하다보면 그들의 고통을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경제를 전공하고 기업의 생존전략을 가르치는 교수로서는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다. 과장이 아닌 표현으로 어떤 때는 가슴이 아파 올 때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슴 아픈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쓴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현실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중소기업들이 어려운 것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대기업들에게 납품하는 그룹이다. 이 회사는 대기업이 망하지 않은 이상 그들에게 납품을 지속함으로써 생존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명백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런 장점과 함께 대기업으로부터 오는 지나친 원가절감 요구, 결재일이 긴 어음 발행, 갑작스런 납품량의 감소, 기술자들의 차출 가능성, 모기업과 가까운 지역으로 공장 이전 요구, 인력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둘째 그룹은 값싼 수입품의 증가와 대형 할인마트 그리고 TV 홈쇼핑과 외국계열의 대형 소매점의 입점 등으로 고객 자체를 빼앗겼거나 원가를 맞출 수 없는 기업들이다. 세 번째는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 지치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원가가 높거나, 제품의 품질이 열악해 팔리지 않을 제품을 만들어 놓고 장사가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다.

중소기업이 장사가 안 되는 이유를 이처럼 특성별로 나누면 해결책도 간단히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해결책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손쉽게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선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소위 갑질이라고 하는 것은 중앙정부 이외에는 처리하기 어렵고, 정부도 많은 시정조치를 했다. 그러나 조치를 했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만큼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법이 있다면 중소기업들의 이런 문제를 상시에 확인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담기관 설치와 그들에게 고발권까지 주는 방법이다. 전담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이 경우 고발권을 가진 전담기관 설치가 바람직하다.

두 번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역을 정해주는 것이다. 물론 자유경제 사회에서 영역을 인위적으로 정해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재래시장 살리기를 위한 대형마트의 의무 휴일제 효과성에 대해서도 참 말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서민대책은 누가 뭐래도 효과가 있다. 최소한 심리적 효과라도 있다. 외국에는 물론 이런 정책이 없다. 그러나 외국에서 포드나 GM이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소니가 대형 할인마트를 차린다거나 커피점과 빵집을 전국적으로 차리는 법은 절대로 없다. 우리나라처럼 대기업들이 무소무위로 모든 산업에 뛰어드는 나라는 정말로 없다. 이것은 미래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기업들이 하니까 훨씬 더 깨끗한 매장에 선진적인 모습을 갖춘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그러나 미래에 대기업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고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국민소득의 불균형으로 인해 국내 소비 자체가 줄어들고 3만불, 4만불로의 성장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무분별한 대기업 영역의 확대, 그리고 대기업 홈쇼핑의 허락은 정말로 자제시켜야 할 일이다.

다음으로는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대기업 쇼핑몰 또는 대형할인마트의 무분별한 허가를 자제하는 일이다. 입점을 허가하지 말란 얘기는 아니다. 요구하는 대로 허락하지 말라는 얘기다. 대형할인마트 하나는 최소 600~800개의 소매점을 문 닫게 한다. 다음으로는 중소기업의 몫이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이가 해야 할 몫이다. 우선 내가 판매하는 제품을 내 돈을 주고 사겠는가 냉정하게 생각해 보라. 값이 적당한가? 경쟁자보다 기능이 더 좋은가? 튼튼한가? 더 예쁜가? 더 따뜻한가? 더 가볍고 쓰기 좋은가? 만약 아니라면 힘들다는 이유를 대지 말고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 시장은 이미 열릴 대로 열렸다. 고객들은 힘들여 번 돈으로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권한도 있고 또 골라 구입할 수 있는 환경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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