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타로카드 11번 힘

에리히 프롬은 <불복종에 관하여>에서 복종할 것이 무엇이고 불복종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내면의 명령에 복종하고, 남들이 요구하는 일반적인 길에 대해서는 불복종하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라고 역설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11은 10과 1의 만남이다. 그리고 그것을 합하면 2가 된다. 10은 나만이 보는 새로움의 세상이고, 1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우연과 다양한 첫 시작을 직감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2라는 선(線)이 돼 가야 할 방향을 만들어주고 자신의 진실한 삶의 길을 찾게 된다.

시크릿 타로카드 11번 힘 카드는 내 안의 나를 보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 솔직하게 옷을 벗었다. 가냘프지만 단단해지고자 정신을 차린다. 이 카드를 ‘용기’라고 부른다.
자신의 길을 찾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용기뿐이다. 그것은 남들이 쉽게 이해하거나 요구하는 길이 아닌, 자신만이 갖는 진실한 느낌의 길이기에 더 이상 앵무새처럼 남을 따라 할 수가 없다.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11은 홀로 고독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다름’을 향해, 아무도 가보지 않은 알 수 없는 길을 오로지 진실한 느낌 하나에 의지한 채 나아간다. 물론 그것은 낯설고 두렵고 남들에게 비난받을 만한 길일 수 있다. 의사자격증을 따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 부자인 아버지를 가졌음에도 집을 떠나 스스로 밑바닥부터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음악과 미술에 몰두했던 수많은 예술가들, 현실적 생각은 멀리하고 상상을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몽상가들….

수많은 개성의 소유자들이 11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11은 타협하지 않는다. 남들의 인정여부에 상관없이 자신이 가고자 하는 세상이 보이기 때문에 신이 인도하는 그 길을 따라가야만 간다.

삶은 우리에게 11의 시간을 준다. 사춘기 소년 시절도 그렇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제2의 삶, 제3의 새로운 삶을 꿈꿀 때도 11의 시간은 온다. 그것은 남과 똑같은 이야기가 아닌,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하는 깊은 내면의 명령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한다. 자신을 배반하고 자신의 진실함을 숨기면서까지 타인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고자 하는 단 한가지의 이유는 새로운 삶에 뛰어드는 것이 너무도 두렵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믿지 않고, 뭔가 빼앗기거나 잃는 것도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는 결국 힘들게 참고 살았다는 지겨운 삶의 이야기와 초라한 죽음만이 있을 뿐인데도, 그들은 거기에 안주한다.

11은 어리석은 소년의 치기어린 투정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동하는 힘이 있고, 꿈이 있다. 물론 실패할 것이다. 그리고 아플 것이다. 세상은 소년의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그 시작이 우리를 지혜와 능력을 갖게 되는 12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 무모해 보이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가 없다. 믿음이 없는 한,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11을 가진 소년의 마음엔 오로지 신이 만들어낸 내면의 소리에 대한 믿음만이 있다. 그것이 용기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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