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니고개는 기흥구 신갈동과 보정동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영동고속도로가 경부고속도로와 만나서 서울 방향으로 합류하는 곳이 대략 소마니고개가 있던 곳이다. 소마니고개는 손맞이고개가 변한 것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고개’라고 한다. 따라서 한자로 망객현(望客峴)이라고 표기한다.
소마니고개가 있던 바로 남쪽에는 신역동마을이 있는데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 신역동마을은 신촌과 역동을 합쳐 생긴 이름으로 본래는 영남대로상 구흥역이 있던 곳이다. 구흥역의 본래 이름은 용흥역(龍興驛)인데 조선 초에 명신이었던 하륜이 지나가다가 지방의 역 이름으로는 참람하다(분수에 넘쳐 지나치다) 해서 구흥역으로 고쳤다는 이야기가 <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다.

왕조시대에 용이 흥한다는 것은 왕이 난다는 뜻과 통하는 것이니 시골 역의 이름으로는 분수에 넘치는 것이었을 것이다. 만약 용흥역의 이름이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돼 내려왔다면 용인에서 대통령을 배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이를 통해 인위적인 이유로 지명이 바뀌는 예를 보게 된다.

소마니고개는 바로 아래 역이 있으니 당연히 역로가 지난다. 그것도 삼남으로 연결되는 도로이니 지금으로 치면 1번 국도가 지나는 교통상 요지이다. 용인이 서울의 인후, 즉 목구멍에 해당되는 곳이라는 <동국여지승람>의 표현은 바로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역로 위에 있는 고개이니 길손들이 끊임없이 오갔을 것이고 객망현이라는 고개이름이 붙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약 100년 전의 기록인 <조선지지자료>에는 한자표기는 객망현으로 같지만 우리말 이름은 손바리기고개로 돼 있다. 손바리기고개가 객망현이 되는 것은 ‘손+바라기’로 보아 ‘손님을 바라는 고개’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손님을 맞는 고개와 같은 뜻이 된다.

그런데 약 100여년 만에 손바리기고개가 소마니고개로 달라지는데 손바라기고개라는 이름도 함께 쓰이고 있다. 소마니고개를 소가 많다는 뜻으로 우만현(牛滿峴)으로 쓰지 않는 것만 해도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여담이지만 수원 우만동의 예 이름은 ‘소마니뜰’이라고 한다. 정조대왕 때 수도를 화성(華城)으로 옮기면서 백성들에게 소를 나누어 기르게 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는 그럴듯한 이야기까지 덧붙이고 있다.

어찌됐든 소마니고개보다는 손바리기고개가 더 오래된 우리말 땅이름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비록 선마라기고개 같은 표현이 쓰인다 해도 손바리기고개의 변음일 뿐이고, 손바리기는 ‘손+바리기’로 풀어 볼 수 있다. 바리기는 음식을 담는 조그마한 사기그릇을 가리키는 말인데 ‘바래기’라고도 하며 표준말로는 ‘바라기’라고 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크기는 보시기만 한데 아가리는 훨씬 더 벌어졌다고 나와 있다. 보시기는 김치나 깍두기 따위를 주로 담는 반찬 그릇의 하나로 모양은 사발 같으나 높이가 낮고 크기가 작다. 쉽게 말하면 바닥이 좁고 깔때기 모양으로 생긴 작은 그릇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손바리기고개를 길손을 바라는 이나 손님을 기다리는 뜻으로 보지 않고 생긴 모양에 따라 생긴 이름일 가능성은 없을까? ‘손’은 작고 좁다는 뜻이고 바리기 역시 작은 그릇을 나타내니 ‘작은 바리기처럼 생긴 고개’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낮은 능선에 고갯길만 작고 낮게 패어 있다면 위와 같은 이름이 붙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은 옛 고개의 흔적도 없고 아래편에 있던 마을도 달라졌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로는 더 넓어져서 매일같이 수많은 길손을 맞이하고 있으니 이곳도 용인에 있는 또 하나의 예언지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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