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차게 느껴진다. 하늘은 맑고 투명하다. 더위에 지친 산과 들이 잠시 숨고르기를 하듯 초록의 향연이 조금씩 빛을 가라앉힌다. 유난히 더워 가지 않을 것 같던 여름도 자연의 순리 앞에 무릎을 꿇는다. 가을이 왔다.

초록빛을 내던 잎 속의 엽록소가 가버린 여름을 따라 떠나갈 채비를 하고, 조용히 기다리던 단풍의 색소들이 그 자리로 떠오르려 준비를 한다. 그 잎들 사이로 열매들이 익어간다. 잎이 만들어준 열매라 잎을 따라 초록을 띠다가 조금씩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간다. 노랗게, 빨갛게, 갈색으로, 때로는 검은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상상하는 열매의 색깔은 대부분 사과의 빨강이나 배의 노랑이다. 그런데 그 식상함에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열매가 있었으니 바로 작살나무 열매이다.

작살나무 열매는 둥글고 크기가 3mm정도로 아주 작은 것들이 여러 개 모여서 달린다. 모양은 그저 그럴듯하다. 그러나 작살나무 열매의 혁혁한 특징은 색깔이다. 붉은색이 섞인 보라색으로 어떤 이는 자주색이라고도 하는데 정확히 그 색을 표현할 색깔명을 모르겠다. 약간 형광빛도 있어 반짝이는 영롱한 구슬보석 같다. 한번 보면 절대 잊히지 않는 강렬하고 매혹적인 열매이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작살나무를 열매에 주목해 ‘아름다운 열매’란 뜻으로 뷰티 베리(Beauty Berry)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자주색 구슬이라 해서 자주(紫珠)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지에 잎이 마주나는 모양이 물고기를 잡을 때 썼던 작살이라는 도구와 비슷하다해서 작살나무란 이름이 붙었다. 우리 조상님들은 작은 열매가 눈에 띠기는 해도 먹기엔 계륵과 같아 그보다는 실생활에 꼭 필요한 작살을 닮은 나뭇가지가 더 맘에 와 닿은 모양이다. 같은 나무를 보더라도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이렇게 이름이 확 달라진다.

작살나무는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형태적 변이가 심한데, 분류학적으로 다른 종으로 볼 것인가 아님 그저 환경적 조건의 차이에 따른 다른 생김새를 가진 같은 종으로 볼 것인가를 놓고 학자들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전체에 털이 없는 민작살나무, 열매가 흰색인 흰작살나무, 주로 바닷가에서 자라는 왕작살나무 따위가 있다.

용인에서 보는 작살나무를 굳이 구분하자면 좀작살나무와 작살나무이다. ‘좀’이라는 말은 ‘좀스럽다’란 말에서 쓰이는 것처럼 ‘작고 하찮다’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인데 식물에게 있어 어찌 하찮은 게 있으랴. 다만 이름처럼 작살나무보다 좀작살나무가 작게 자란다. 작살나무는 4미터까지 자라고 좀작살나무는 그보다 작은 2미터까지 자란다. 또한 작살나무 잎이 전체적으로 톱니가 있는 것에 반해 좀작살나무는 잎 아래쪽에는 톱니가 없이 밋밋하고 중간 윗부분만 톱니가 나 있는 것으로 구분한다. 게다가 통꽃인 작살나무 꽃의 길이가 좀작살나무에 비해 긴 것도 특징이다. 둘 다 관목으로 가지가 밑둥으로부터 여러 개가 나와 자라는데 자랄수록 옆으로 둥굴게 쳐진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둥근 모양이 마치 버섯 같다.

작살나무 꽃은 여름의 끝 무렵 8월에 연한 자줏빛으로 피어나는데 워낙 작아 눈에 쉬이 띄지 않는다. 좀 세심하게 살펴봐야 보인다. 꽃보다는 향기에 먼저 놀라 주위를 둘러보다 찾게 될 정도로 향이 좋다. 꽃이 지면 바로 열매가 달리는데 가을이 깊어짐에 따라 초록에서 진한 보라색으로 익는다. 먹을 수 있는 열매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가을부터 겨울까지 내내 달려있어 새들의 먹이가 된다.

작살나무는 이름은 생소하지만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 원래는 산에 살고 있는 나무이나 보기에 좋아 조경용으로 많이 심어놓았다. 도심 주변 공원에서도 볼 수 있고 동네 뒷산에 오르면 얼마 안가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다만 몰라서 알아보질 못했을 뿐이다. 지금이 작살나무를 찾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한번 보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매혹적인 빛깔의 열매를 가진 작살나무를 찾아 나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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