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뒷산 줄기를 타고 내려와 마을 앞을 흐르던 하천은 동심 가득한 그 시절의 우리에겐 좋은 놀이터였다. 그곳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지금처럼 주변에 수영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마땅히 더위를 피해 갈 수 있는 곳이 따로 있지도 않았으니 여름철, 물에 들어가서 노는 것이 가장 신나고 재미있는 놀이였다.

추운 겨울은 그 나름대로 즐거웠다. 살얼음 아래로 ‘졸졸졸’ 물이 흘렀고, 혹여 그 물에 빠질까봐 겁을 냈다. 어린 마음에 ‘신발이 물에 빠져서 젖으면 엄마한테 혼나지’ 하는 마음에 더 조심을 했던 것이다. 얼음 위에선 미끄럼 타기, 썰매 타기, 팽이 치기, 얼음 지치기 같은 것을 하면서 놀았다. 그때 하천에서의 추억은 그리운 시절의 재산이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한다. ‘더위를 피해서 물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나 겨울날 살얼음 위를 조심스레 걷는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작은 키의 내가 껑충 뛰어야만 건널 수 있었던 그 돌다리와 징검다리는 또 어디로 갔는가?’ 우리 아이들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면 자연도 우리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자연으로 이끄는 것은 그와 같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작은 “자 여기 버드나무가 있네. 나 어렸을 적엔 버들피리를 불면서 놀았단다. 어디 우리도 한번 만들어서 불어볼까?”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던 소중한 하천은 배수와 정화 및 생물 다양성 보존능력을 유지,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천변의 식물은 토양 마모를 방지하고 기온의 급격한 상승과 건조화를 예방하며 영양염류를 축적, 수서생태계로 지나치게 많은 유기물이 유입돼 부영양화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한다. 하천변의 물은 증발과 이동을 통해 잠열을 앗아가 도심 열섬현상을 개선하고 잦은 결로 현상을 일으켜 대기 중 먼지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먼지에 대한 심각성은 차량이 증가할수록 점점 더해져만 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천과 하천변의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하천에는 물이 있어야 한다. 물이 사라진 하천에는 생물이 존재할 수 없다. 물은 생물을 살리는 기본 요소이다. 요즈음 물이 예전만큼 흐르지 않는 하천을 자주 목격한다. 비가 오랜 기간 내리지 않으면 마침내 그곳에 녹조가 끼게 되고 그때는 하천도 자정 작용을 상실한다. 하천이 병들지 않아야 그 안에 물도 유유히 흐를 수 있는 것이다. 물은 상을 짓지 않고 다투지 않는다. 물이 있는 곳에서 자라나는 버드나무도 물의 성질을 닮아서 그 이름처럼 부드럽다. 그렇다고 마냥 부드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버드나무의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내면은 그보다 훨씬 힘이 있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이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조선시대 기녀 홍랑의 시조로 그리움의 대상에 대한 한없는 충정심이 느껴진다. 홍랑이 그냥 물가에 있는 버들도 아닌 묏버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미루어 짐작컨대, 버드나무가 가진 특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오랜 시간 대상을 가까이 하면서 곱씹어야만 감정이입이 가능한 것이다. 이 시조를 접하니 가녀린 그녀의 손길에 가서 닿았던 묏버들의 심정을 헤아리게 된다. 슬그머니 그 떨림이 전해오는 것 같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