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에 가면 유독 눈을 끄는 꽃이 있다. 화분에서 올라온 둥글게 짠 철사 틀에 기대어 자라는 덩굴식물인데 색깔도 흰색, 분홍색, 자주색, 보라색으로 손바닥만큼 크게 피는 꽃이 여간 화려하지 않다.

꽃집에서는 클레마티스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클레마티스는 이러한 식물을 총칭하는 으아리속을 가리키는 속명이다. 클레마티스(Clematis)란 어리고 가냘픈 가지가 길게 뻗어가는 모양으로 연약한 줄기를 가진 덩굴식물들을 뜻하는 말이다. 으아리와 사위질빵이 이에 속한다. 으아리와 사위질빵은 자주 비교대상이 된다. 둘 다 미나리아재비과이며 하얀색 꽃이 피고 클레마티스라는 속명을 가지고 있는 덩굴식물이다. 그러나 으아리는 초본 즉 풀이고 사위질빵은 목본 즉 나무이다. 우리 식물 중에 큰꽃으아리라고 있는데 이것이 꽃집의 클레마티스와 가장 유사하다.

속명처럼 사위질빵은 줄기가 약한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말로 하면 ‘허당’이다. 나무라 딱딱한 줄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끊어진다. 그래서 유래한 전설이 있다. 옛날에 사위를 아끼는 장인 장모가 가을걷이를 하면서 다른 일꾼보다 사위의 짐을 적게 지게 하기 위해 약한 이 식물 줄기로 지게끈을 만든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끈이 약하니 큰 짐을 지게 할 수 없으리라. 이는 어쩜 사위를 에둘러 딸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다. ‘사위에게 잘 해줘야 그 사위가 내 딸에게 잘 해줄 것이 아닌가?’라는 친정부모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 딸이 시집에 가면 며느리가 된다. 그런데 며느리라는 이름이 들어간 식물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시집에서 구박을 받거나 핍박을 받아 한이 서린 이야기가 많다. 그렇게 살다가 죽어서 꽃이 되었다는 전설. 정말 서럽다. 며느리밥풀,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등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중요한건 이 식물들의 이름이 처음부터 이랬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이름은 식물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1937년 식물명에 관한 책을 만들면서 일본의 식물명을 그저 베껴 옮겨왔다고 한다. 이른바 식물도 창씨개명을 하게 된 셈이다. 우리 민족이 불렀던 며느리배꼽의 원래 이름은 사광이풀, 며느리밑씻개는 사광이아재비라 한다. 사광이풀이나 사광이아재비에서는 며느리에 대한 어떤 단서도 유래도 찾아볼 수 없다.

사위질빵이란 이름도 그때 나타난 정체불명의 이름이다. 허준의 ‘동의보감’(1613년)을 보면 ‘술위ᄂᆞ물불휘’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사위질빵의 뿌리를 약재로 쓴 데서 나온 이름이다. 예전에 필자가 산사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쓰며 우리 지역과 관련 있는 이사주당의 아들 유희가 쓴 ‘물명고’라는 백과사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중국식 표기인 산사나무가 원래는 아가외나무였듯이 사위질빵은 ‘술의나물’로 기록돼 있다. 술위가 술의로 다시 수뤼가 되었다가 수레가 됐다는 유래다.

수레나물이란 이름답게 봄에 연한 잎을 따서 먹거나 묵나물로 만들어 먹었다. 줄기와 뿌리는 약으로도 사용했다. 그러나 독성이 있어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 그 독성으로 구토와 설사는 물론 이가 빠질 수도 있다니 정말 조심해야 하는 식물이다.

사위질빵은 산과 들에 흔한 덩굴나무이다. 그러나 칡이나 등나무처럼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여름 이맘때쯤이면 노란빛이 도는 하얀색 꽃을 무리지어 예쁘게 피운다. 자세히 보면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꽃받침으로, 꽃잎은 퇴화돼 안보이고 꽃받침 네 장이 십자모양으로 핀다. 유난히 긴 수술로 인해 꽃이 화려하게 보인다. 꽃이 지고나면 꽃받침과 수술이 떨어지고 1~2㎝ 정도의 흰색 또는 갈색 털이 달린 암술대가 남아 열매가 익을 때까지 붙어 있다가 바람에 날려 간다. 씨앗에 털이 달려 있는 모양이 마치 수레바퀴가 돌 듯 힘찬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이래서 수레나물이라 불렀구나, 확 느껴진다.

요즘같이 따가운 햇살 속에서도 가녀린 줄기를 뻗어 큰 나무를 올라타고 햇살을 즐기며 꽃을 피운다. 빛나는 별이다. 햇살이 사그라질 때 쯤 씨앗은 영글어 멀리 날아갈 채비를 하듯 힘차게 수레바퀴를 돌리는 수레나물, 사위질빵.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