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실은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에 딸린 마을이다. 아리실은 방아리 방축동에서 남쪽으로 골짜기 깊숙이 들어가다가 오른쪽으로 사기막 고개를 넘어 원암리로 이어진다. 아리실에는 용인 내에서 두 번째 역사를 가진 아리실교회가 있는데 수많은 성직자와 교회 음악가를 배출한 마을로 유명하다.

<내고장 용인 지명지지> 편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실려 있다.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 잡았으므로 밖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사람의 입으로 치자면 들어나지 않은 어금니 같고, 감추어진 어금니로 잘 씹어 먹으면 건강에 이롭다는 뜻과 사람이 사는 집이 있으므로 이의 뜻을 한자로 표기하여 아리실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는 아리실의 아리를 아리(牙利)로 생각한 것인데 한자로 쓰면 아리실(牙利室)이 된다. ‘-실’을 골짜기를 나타내는 우리말이니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아리는 우리말이면서도 한자로 아리(牙利)로 표기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설명이 나오게 된 것이다. 아리는 다리(足)의 옛말이다. 또 ‘사랑하는 님’을 일컫는 우리 민족 전래 고어이기도 하다. 모두 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이 뜻을 가져다 붙여도 아리실의 의미가 언뜻 와 닿지 않는다. 마을 지형이나 입지를 봤을 때 쉽게 수긍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1917년 당시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1:50,000지도가 있는데 현대적 지도제작법에 의한 축적지도로는 최초이다. 지도에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의 지명과 이전의 지명이 나란히 표기돼 있다. 즉 새로 생긴 리명은 그대로 표기한 반면 이전의 리명, 즉 자연마을 명칭은 괄호 속에 표기해 놓았는데, 행정구역 개편 이전과 이후 지명이 함께 있기 때문에 지명연구에 대단히 귀중한 자료이다.

지도에 표기된 대부분의 지명이 현재의 지명 표기와 일치하지만 그 중 일부는 지금의 지명표기와 다른 것도 있다. 특히 한자표기 옆에 일본어 가타카나로 우리말 지명을 병기해 놓았는데 김치를 기무치라고 하는 것처럼 일본어 표기의 특성상 한계가 있긴 하지만 우리말 이름을 추정하기에 어려움이 없다.

예를 들면 학현(鶴峴)이라는 표기에는 학고개의 발음을 그대로 옮겨 ‘ハクコケ’라고 돼 있고,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의 앞고지는 전곳리(前串里) 표기에 ‘アプコヂ-’로 돼 있으며, 양지면 주북리의 박성동은 박성리(朴成里)라고 쓰고 ‘チルウゲ’라고 쓰는 식이다. 이를 우리말로 읽으면 각각 학고개와 앞고지, 치루개가 된다.

그런데 위 지도에 아리실의 표기는 아곡리(牙谷里)라고 쓰고 ‘アレシルリ-’로 돼 있다. 이를 우리말로 읽으면 아레시루리, 즉 아래실이 되는데 아리실과 차이가 있다. 특히 아리실의 ‘-리-’를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는 일본어의 ‘-リ-’가 있음에도 ‘-レ-’를 쓴 것은 ‘-リ-’보다 ‘-レ-’가 더 우리말 땅이름에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아리실은 <호구총수>나 각종 읍지류, <조선지지자료> 등에도 나타나지 않는 지명이다. 간혹 골짜기나 들 이름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아리실은 여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원암리에 딸린 작은 마을이거나 아예 마을이 늦게 형성된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아리실은 아래실, 즉 아래 있는 골짜기의 뜻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대부분의 땅이름은 큰골이나 좁은골 긴골이나 샘골처럼 흔하고 일반적인 관점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아리실 역시 그런 관점에서 생긴 이름인데 한자 표기에 어금니 아(牙)자를 쓰게 되면서 위와 같은 풀이가 생겨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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