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소고기국물 50가론 속에 배양된 폐렴균에서 1/3 온스의 와크틴이 생겨 이를 4천인에게 주사할 수 있다”는 폐렴 예방주사가 개발됐다는 소식을 국내에 전해준 1937년 동아일보 단신 기사로 1930년대 미국 예비군 12만명을 대상으로 한 폐렴구균 백신 임상 실험을 소개한 글이다. 폐렴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때 예방주사가 개발됐다고 하니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1886년 폐렴구균이 폐렴을 유발시킨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폐렴의 근본적인 치료방법이 연구됐다. 몸을 따뜻하게 하거나 약초 복용은 대증치료에 불과할 뿐 세균을 제거할 수 없었다. 19세기 후반은 파스퇴르와 코흐가 활동하던 미생물학의 전성기로 곧바로 백신 개발과 혈청 치료가 시도됐다. 혈청 치료만으로도 41%에 이르렀던 폐렴 환자 사망률은 20%까지 떨어졌고 특히 노년층의 경우 70%에 이르던 사망률이 40%로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혈청 치료와 동시에 질병의 근원 자체를 예방하기 위한 백신 개발이 시작됐다. 1882년 스턴버그가 토끼 실험에서 폐렴구균 백신의 폐렴 예방효과를 발견했고, 1911년 영국 라이트는 남아프리카 금광 노동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백신 접종을 진행했다. 당시 남아프리카 금광 노동자들은 직업적 혹은 위생적 문제로 많은 폐렴 환자가 발생했는데 5만명에게 백신을 주사한 결과 폐렴 환자가 절반 이상 줄고 사망률도 1/3로 감소됐다. 그러나 라이트의 백신은 완벽하지 못했는데 폐렴구균 자체가 여러 가지 형태였기 때문이다.

폐렴예방주사 개발을 알리는 동아일보 기사(1937.11.21)

폐렴구균은 얇은 껍질 같은 것에 쌓여져 있는데 껍질이 있는 세균만 질병을 유발시켰고 껍질이 없는 세균은 병원성이 없었다. 이 껍질은 피막이라고 불리는데 폐렴구균 종류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어 백신의 효능이 없어지곤 했다. 1909년 독일 뉴펠드가 폐렴구균 피막이 혈청에 의해 부풀어 오르는 현상을 관찰하고 종류에 따라 부풀어 오르는 정도가 약간씩 다른 것을 발견했다. 뉴펠드의 발견은 폐렴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혈청을 찾는데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백신 분야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1차 세계대전 중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폐렴구균 백신은 ‘독감 백신’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다양한 종류가 개발돼 빠르게 보급됐다. 폐렴구균 백신이 독감 백신은 아니었으나 독감의 2차적 합병증인 폐렴을 예방할 수 있었기에 적어도 사망률을 크게 감소시켰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1917년 도쉐와 애버리가 폐렴구균 피막에서 당분으로 구성된 사슬 형태의 녹는 물질을 발견했다. 이 물질은 폐렴구균의 피막 형태를 구별하는데 도움을 줄뿐 아니라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발견됐다. 전체 폐렴 구균으로 백신을 개발하는 것보다 다당류 형태의 물질을 이용하는 것이 부작용을 줄일 수 있어 곧바로 다양한 형태의 다당류 폐렴 구균 백신이 개발됐다. 서두에 소개된 미 육군 폐렴 백신의 대규모 임상 실험은 이 시기의 일이다.

1930년대 이후 설파제와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제들이 차례로 개발되면서 폐렴 사망률은 급속도로 감소됐다. 폐렴이 항생제로 치료되면서 백신에 대한 관심이 적어졌고 개발된 제품도 사용되지 않아 버려지곤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항생제 내성균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폐렴 치료는 또다시 벽에 부딪치게 됐고 폐렴 발생 자체를 예방하자는 움직임이 다시 시작됐다. 폐렴구균에 대한 연구와 발달된 기술로 부작용이 훨씬 적고 더 효과적인 백신들이 속속 개발됐다. 다당류를 이용한 백신과 함께 단백질에 다당류를 붙여서 보다 강력하고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 백신들이 개발돼 현재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보건소는 다당류 백신을 주고 있으며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단백질에 다당류를 접합시켜 강력하고 오랜 기간 면역력이 유지되는 백신이 접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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