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 공연 모습.

투란도트(Turandot)는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이자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나비부인과 같이 동양을 무대로 하고 있다. 10여 년 전 중국의 자금성과 똑같이 꾸민 서울 상암경기장의 휘황찬란한 무대에서 중국의 장이모 감독의 연출로 공연했던 경험이 이 오페라를 한국에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음악적인 동기는 푸치니가 런던 여행 중 구입한 뮤직박스 오르골에서 나오는 멜로디(황제찬가)를 듣고 나서다. 그 멜로디를 작곡에 인용하면서 동시에 5음 음계와 탐탐, 공, 실로폰, 종 등 중국 악기들의 도입으로 이국적 분위기를 내는데 큰 효과를 봤다. 이태리어 대본에 중국이야기. 작곡가 푸치니는 나비부인에 이어서 또다시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중국을 무대로 오페라를 쓰다가 후두암이 악화돼 마지막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이후 그의 제자들이 마지막 부분을 대신 작곡하고 거장 토스카 니니의 지휘로 초연됐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동양적인 멜로디가 곳곳에 숨어있으면서도(중국 멜로디를 수회 사용한 점) 흡사 영화음악에 가까운 실용적이고 세련된 멜로디가 가득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또 중국 전통의상을 입고 연기하는 모든 조연들이 중국인형을 흉내 내는듯한 캐리커처적인 면도 매우 특이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투란도트는 피해자 신드롬에 사로잡혀 있는 중국의 공주다. 남자들에게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조상중의 한 사람인 로우링 공주의 죽음에 쇼크를 받고 남자혐오증(트라우마)에 걸린다. 모든 남자를 적으로 여긴 나머지 그녀에게 청혼하는 남자들에게 목숨을 건 3가지 수수께끼를 내놓는다. 3가지 중 하나라도 틀릴 경우 즉시 망나니의 칼로 참수형에 처해지는 대가를 치러야한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나라에서 공주를 차지하고자 수없이 많은 왕자들과 귀족들이 도전자로 나타나고 북경의 왕실 앞에는 청혼자들의 잘려 나간 목이 수없이 매달려 전시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너무나 잘 알려진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아리아의 주인공인 몰락한 국가의 왕자 칼라프(테너)는 공주의 수수께끼 3개(희망, 피, 투란도트)를 모두 맞히고 동이 틀 때까지 투란도트에게 자신의 이름을 맞히면 기꺼이 죽겠노라고 말한다. 여기에 그 유명한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아리아를 부르며 승리를 다짐한다. 혼자서 칼라프를 사랑했던 노예 리우(소프라노)는 투란도트의 모진 고문에도 끝까지 왕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자살을 택한다.

투란도트 공주도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자신의 모습에 놀라면서 왕자의 이름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흔히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투란도트의 얼음이 순식간에 녹는 순간에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멜로디가 오케스트라의 힘찬 연주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두 사람의 화려한 결혼식이 준비되면서 오페라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팜 파탈인 공주를 사로잡는 옴 파탈의 이미지는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같은 출중한 외모에 키가 훤칠한 테너가수에 미성의 강철 같은 목소리의 소유자가 어울린다. 반면 투란도트는 망나니의 칼질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로 목소리 또한 아름다운 미성보다는 잔인한 면이 가득한 날카로운 드라마틱한 소프라노가 잘 어울린다. 칼라프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노예 리우는 그 역할처럼 애잔하고 아름다운 전형적인 미성의 소프라노가 적합하다. 이렇듯 오페라에서는 정해진 역할의 분담을 목소리의 색깔과 볼륨 등으로 평가해 배역을 맡기게 된다.

영화배우는 외모로 역할을 대변하지만 오페라가수는 자신의 목소리로 그것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비주얼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서는 오페라가수들의 역할 또한 목소리보다 비주얼이 더 중요시 되고 있는 편이다.

목소리는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세를 얻은 가수들이 적지 않다. 30~40년 전 오직 목소리로만 승부를 걸었던 시대와 사뭇 다른 시대로 접어든 셈이다. 대체적으로 파바로티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의 소유자가 멋진 외모까지 겸비하기란 아주 드문 일이며 더욱이 육중한 몸매의 소유자들이 대부분인 성악가들이 무대를 꽉 채우면서 연기하는 부분에서는 사뭇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어느 평론가가 말하기를 “오페라 청중은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는 말처럼 아이러니하지만 만족할 만한 부분만을 골라서 감상할 줄 알 정도가 되면 진정한 오페라 청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