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고열과 호흡곤란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폐렴은 현재도 치료가 쉽지 않은 질병 가운데 하나이다. 다양한 세균과 바이러스 같은 외부 물질에 의해 발생하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원인은 세균에 의한 경우다.

폐렴이 세균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9세기 후반으로 그 이전까지는 추운 공기에 의해 발생한다고 믿었다. 이 개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일해서 한방에는 풍사, 즉 찬 공기에 사악한 기운으로 발생한다는 생각을 했으며 기침이나 가래, 발열 증상에 마황, 도라지, 감초 등의 약초를 상용했다.

서양에서도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감초 등의 약초를 복용하거나 심지어 찬 기운을 막기 위해 후추를 술에 타서 먹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치료는 폐렴의 근본 원인인 세균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어서 항생물질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폐렴의 원인인 세균을 찾기 위한 노력은 현미경이 개발되면서 시작됐는데 1875년 독일의 크렙스가 호흡기 질환 환자의 객담에서 세균을 최초로 발견했으나 이 세균이 어떤 종류인지 폐 질환과 관련이 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이후 폐렴의 원인균을 찾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경쟁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독일의 유명한 미생물학자였던 프리들랜더도 그 중 한명이었다.

1882년 프리들랜더는 폐렴 환자 조직에서 동그란 작은 공이 두 개 붙어 있는 모양의 세균을 찾아냈고 이 세균이 폐렴의 원인균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후속 연구를 진행했다. 이후 짧은 막대기 모양의 세균이 함께 발견되면서 어느 것이 진짜 폐렴의 원인균인지 논란이 시작됐다.
가래와 염증세포 등이 엉겨 붙어 있는 폐렴 조직에서 현미경으로 세균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프리들랜더 연구실의 한스 그람이 세균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염색 방법을 발견했다.

프리들랜더가 가래에서 폐구균을 그린 그림.
동그란 작은 공이 두 개 붙어 있는 형태의
전형적인 폐구균을 묘사하고 있다. 1882

덴마크의 한스 그람은 수련의 과정을 막 마치고 독일 베를린 프리들랜더 연구실에서 잠시 근무하던 중 어느 날 실수로 염색약을 연구 슬라이드에 엎지르게 됐다. 그람은 알코올을 사용해 연구 슬라이드를 세척한 뒤 다시 관찰을 해보니 세포에 염색됐던 시약은 알코올에 씻긴 반면 세균에는 보라색 염색약이 남아 있었다. 프리들랜더와 그람은 이 염색 방법을 응용하면 폐 조직에서 세균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람이 발견한 염색방법은 오늘날까지 그람 염색법으로 불리며 세균의 분류도 그람 염색이 되는가 안되는가에 따라 구분될 정도로 중요한 발견이었다.

프리들랜더는 두 개의 균을 잘 분리 배양하지 못해 정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84년 프렌켈이 동물 실험에 성공하면서 막대기 모양의 세균은 폐렴을 잘 유발시키지 못하는 반면 작은 공 두 개가 붙어있는 모양의 세균은 치명적인 폐렴을 유발시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오스트리아의 바이젤바움이 수 백 명의 폐렴 환자에서 두 개의 공이 붙어 있는 형태인 쌍구균이 폐렴환자의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쌍구균이 폐렴의 원인임이 확실시 됐고 쌍구균의 이름을 폐렴 쌍구균이라고 명명했다. 폐렴 쌍구균은 폐렴 구균으로 명칭이 바뀌고 백신이 개발됐는데 흔히 폐렴 예방접종으로 알려진 폐렴 구균 백신이다.

한편 프리들랜더가 발견했던 다른 짧은 막대기 모양의 세균은 면역이 떨어졌을 때 이차적으로 폐렴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초로 호흡기에서 세균을 발견한 독일의 크렙스의 이름을 따서 크렙시엘라 폐렴균이라고 부르고 있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