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에도 생명이 있다. 새로 생기는 지명이 있는가하면 어느새 기억에서 사라져버리는 지명도 있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던 물건의 모양을 딴 지명은 더욱 그렇다. 처음 연재를 시작하면서 비행산과 자동차바위를 설명한 적이 있다.

비행기와 자동차가 들어간 지명 이외에도 최근에 새로 생겨난 지명들이 적지 않은데 모두 나름대로 유래를 가지고 있다.

동부전선에서 군 생활을 한 사람들은 펀치볼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터인데 정식 지명은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일대의 분지를 가리킨다. 한자로는 해안(亥安) 이라고 쓰며 침식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고,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 흔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해안분지가 펀치볼이 된 것은 6.25때 미국의 종군기자가 펀치볼(punch bowl)이라는 표현을 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펀치볼은 펀치, 즉 주스와 포도주, 설탕 등을 섞은 칵테일 종류를 담는 그릇을 말한다.

휴전선은 정전협정이 성립되기 직전까지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는데 저격능선, 피의 능선, 김일성고지, 모택동고지, 아이스크림고지와 같은 이름도 여기저기 새로 생기게 된다. 아이스크림고지는 포탄을 하도 많이 쏟아 부어 산 정상부가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뭉그러졌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용인에도 비행산이나 자동차바위 이외에 새로 생긴 지명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기생고개와 송장배미가 있다. 기생고개는 17번 국도에 있는 고개로 자동차에 기생이 깔려 죽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사고가 많았던 고개라고 한다. 송장배미는 6.25때 사람들이 많이 죽은 곳이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송장은 죽은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인데 그리 좋은 표현은 아니다.

마평동 용마초등학교 사거리에서 고진천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고림동 마을 끝부분이 있는데 강원도촌이라고 불렀다. 춘천의 소양강댐은 1973년에 준공됐는데 소양강댐 공사로 인해 수몰된 홍천지역 주민들이 주로 이주해 마을을 이루었기 때문에 강원도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양지면 양지리에서 북쪽으로 정수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기남이고개라고 한다. 고갯마루에는 기남이고개라는 표석이 있는데 정수리 출신 박기만이라는 분이 사업에 성공한 뒤 고향 가는 길에 중장비를 대서 넓게 닦아준데 대해 마을 주민들이 감사를 표하면서 기남이고개라는 표석을 세운 것이 고개 이름으로 굳어졌다. 본래 이름은 정수리로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에서 증세고개(정수고개)라고 불렀고 한자로는 정수현(定水峴)으로 표기한다.

묵리에는 애덕(愛德)고개가 있다. 더불어 신덕(信德)고개와 망덕(望德)고개도 있는데 믿음 소망 사랑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위 고개이름은 양지면 남곡리 은이 천주교성지에서 안성시 양성면에 있는 미리내성지로 이어지는 고개마다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일대는 과거 천주교 박해시대에 천주교인들이 숨어 살았던 교우촌이 많이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성인의 반열에 오른 김대건 신부가 전도하던 길이다.

신덕과 망덕, 애덕고개는 천주교 측에서 교인들의 순례코스로 개발하면서 붙였거나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천주교가 수난시절의 징표로 세운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새로운 이름을 작명한 주체와 연도가 정확하게 남아 있는 새로운 지명이라 할 것이다.

포곡읍 영문리에는 미르마을이 있다. 전원주택단지를 개발하면서 마을 이름을 미르마을로 지었는데 미르는 용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역북동의 신성마을도 6.25 이후 세웠던 피란민 수용소가 모태이니 60여년 남짓한 연륜을 가진 지명이다. 또 수지구 풍덕천동에는 해방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새터말이나 새말[新村], 새동네와 같은 이름을 가진 마을은 이전 마을에 비해 당연히 연륜이 짧다. 하지만 당시에는 막 새로 생긴 마을이었지만, 수백 년이 흘렀다면 이름만 새마을이지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이 된다. 지금도 도시개발을 하거나 새로 전원주택단지를 개발하면 이름을 붙이기도하고 자연발생적으로 이름이 생기기도 한다. 100만 용인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용인이 더욱 팽창한다면 어떤 땅이름들이 새로 나타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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