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뉴스란 무엇인가?” 매일 매일 뉴스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지만, 무엇이 뉴스라고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뉴스(News)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아니한 새로운 소식”으로, 본래 중세 불어 nouvelles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새로운 소식이나 정보가 모두 뉴스인가? 그렇지 않다. 뉴스는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언론매체가 선택해서 독자나 시청자들에 전달할 때에 비로소 뉴스가 된다.

그래서 아무리 큰 대형 사건이라도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다면 뉴스가 될 수 없다. 예를 들면, 1989년 북경의 천안문 사태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 뉴스였지만, 대부분의 중국인에게는 뉴스가 아니었다. 중국정부가 국내언론을 통제해 중국의 신문과 방송은 그 사건을 보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뉴스는 저절로 만들어져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미디어가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상품이자 서비스이다.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미디어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뉴스가 유통됐다. 봉건시대의 뉴스는 지배자와 기득권자들의 전유물이었고, 피지배 계층은 정확한 뉴스 대신 소문이나 추측에 의존하며 불안하게 살아야 했다. 뉴스의 전달도 대부분 개인과 개인 간의 사적 대화를 통해서 이뤄졌다. 19세기 후반부터 인쇄술과 교통통신의 발달로 뉴스의 대중적 보급이 실현되면서 세계 각국에 비로소 근대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과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 간의 간극이 컸다. 누구나 뉴스를 쉽게 접하고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뉴스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였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만이 신문을 만들고 방송을 할 수 있었다. 생산되는 뉴스의 양도 많지 않았고, 그나마 서로 큰 차이가 없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사회는 10여개의 일간신문과 TV방송사 3곳이 국내에서 소비되는 거의 모든 뉴스를 생산, 공급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뉴스의 공급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 인터넷신문과 같은 디지털 언론사들이 크게 늘었다. SNS가 일반화되면서 봉건시대의 개인 간 뉴스교환도 다시 활성화됐다. 소수의 언론사가 뉴스시장을 독과점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개인마다 각자 필요와 취향에 맞춰 뉴스를 선별 이용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뉴스를 얻는 경로도 매우 다양해져 종래의 신문과 방송 외에도 이메일, 포털사이트, 블로그, 유튜브, 페이스북, 카톡 등 스마트폰을 통한 뉴스 이용이 보편화됐다.
그래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사람들이 여전히 뉴스를 원하고 구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보다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많은 뉴스를 신속하게 입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뉴스를 이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유용한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재미를 얻기 위해서이다. 즉 우리는 무언가 유익한 것을 알기 위해서, 혹은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신문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뉴스를 찾고 있지만, 언론사들이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특히 뉴스의 전달 경로가 다양해진 디지털 시대엔 더욱 어렵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유익하고 재미있는 뉴스를 동시에 제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유익한 뉴스와 재미있는 뉴스가 각각 다르다는 점도 언론사들에겐 딜레마다. 그러다 보니 독자나 시청자의 규모가 커질수록 뉴스를 만들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다양한 독자의 취향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고 저렴하게 뉴스를 만들 수 있는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소수 언론사의 뉴스 독과점 폐해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유익한 뉴스를 포기하고 재미있는 뉴스에만 치중하면서 뉴스 시장이 값싼 저질 뉴스로 넘쳐나는 난장판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유익한 뉴스와 재미있는 뉴스가 공존하는 건강한 디지털 뉴스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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