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구지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땅이름이다. 용인에는 처인구 남사면 전궁리에 질구지가 있고, 원삼면 학일리에는 질꼬지가 있다. 두 곳 모두 들 이름으로 나오는데 마을이 생기면 마을이름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골짜기 이름으로 나오기도 한다.

대부분의 지명 유래가 그렇듯이 질고지도 여러 가지 풀이가 있다. 가장 많은 것은 땅이 질어서 생긴 지명이라는 것이다. 질그릇을 만들던 곳에서 비롯된 지명이라는 풀이도 있는데 두 가지 풀이가 모두 ‘질-’ 발음을 따라 쉽게 연상되는 것들이다. 질그릇은 예전에 흔했던 것이고 ‘질쿠렁이’라는 지명처럼 땅에 물기가 많아 질은 곳도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우리말의 변화가 지명에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ㄱ’이 ‘ㅈ’으로 변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는 문법상 구개음화에 속하는 것인데 긴등이 진등으로, 긴밭이 진밭으로 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실제로 용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긴등보다는 진등이, 긴밭보다는 진밭이 훨씬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소리나는 대로 따라가는 자연스런 현상이라 할 것이다.

길고지의 ‘길 -’은 ‘길골이나 길목, 길배미 같은 지명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 질골이나 질목, 질배미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위의 진등이나 진밭과 같은 변화이다. 따라서 질고지도 위와 같은 변화를 보이는 지명인데 길다는 뜻을 가진다.

질고지는 ‘질+고지’로 나눠 볼 수 있다. ‘-고지’는 곶의 연철형으로 끝에 땅이름에 자주 쓰이는 ‘-이’가 결합된 것으로 이 역시 지명에 자주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가 앞고지나 돌고지인데 포곡읍 전대리에 앞고지가, 원삼면 문촌리에 돌고지가 있다.

‘-고지’는 곶(串)의 변음이다. 따라서 질고지는 길곳>질곶>질고지>질꼬지로 변화된 것이다. 곶은 평야나 바다같이 평평한 곳으로 길게 뻗어 나온 산줄기나 능선을 가리킨다. 보통 반도보다 작은 것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유명한 민요에 나오는 장산곶이나 동해안 해돋이로 유명한 장기곶, 호미곶과 같은 지명 또한 같은 의미에서 생긴 것들이다.

질구지와 비슷한 지명으로 진구지가 있다. 진구지도 질구지처럼 길다는 뜻을 가진 지명인데 변화가 약간 다르다. 즉 ‘진-’은 ‘긴-’의 구개음화형으로 ‘긴골, 긴내, 긴등, 긴배미, 긴사래 등이 징골이나 진내, 진등, 진배미, 진사래 등으로 변화되는 것인데 ‘긴-’은 ‘길-’보다 그 쓰이는 범위가 훨씬 넓다.

진구지의 ‘-구지’도 질구지의 ‘-구지’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긴곶>긴고지>진고지>진구지로 변화된 것으로 풀어볼 수 있다. 또 긴곶은 길곶과 마찬가지로 ‘평야를 향해 돌출된 산줄기’로 풀이할 수 있다.

또 ‘긴곶’이 ‘진곶’으로 먼저 변한 뒤에 ‘진고지, 진구지’로 변하기도 하고, ‘긴곶’이 ‘긴고지’로 변한 뒤에 ‘진고지, 진구지’로 바뀐 것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방향으로 변했던지 ‘진구지’는 ‘긴곶’과 같은 의미를 띠는 땅이름인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역에서 진구지는 길게 뻗어 나온 산줄기의 뜻을 가진 곶의 의미를 정확히 반영하는 표기가 많다. 대부분의 한자표기에 장곶(長串)처럼 장이 들어가는 지명이 많은 것이다. 이는 진등이나 진밭들이 긴등이나 긴밭들에서 변화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는 반면, 질고지의 뿌리가 길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보기보다 질거나 질그릇을 먼저 연상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언젠가도 밝혔지만 땅이름의 변화는 문법적인 법칙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소리 나는대로 부를 뿐이다. 멀리 경상도나 전라도 방언이 왜 용인에 나타나는지 따지는 것이 의미 없다는 말이다. 질꼬지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