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연 다통소 소장

처음 타로를 접했을 때는 그것이 마녀나 집시들이 하는 서양식 점술인줄만 알았다. 평소에 모르는 게 많아 호기심이 많던 필자는 타로를 하면 마치 영화 속 심령술사처럼 뭔가 위대한 힘을 가질 수 있을까하는 환상으로 즐거웠는데, 하면 할수록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 지금의 느낌이다.

어느 때는 너무 잘 맞았거나 맞혔지만, 어느 때는 뼈아픈 비난의 소리도 들었기 때문이다. 타로로 신비한 능력을 지녀 주위의 찬사를 받으려던 얄팍한 희망은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해 보고서야 불가능한 것임을 알게 됐다.

그래서 타로라는 점술이 과연 무엇이며, 타로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타로카드는 도구이다. 우리가 거울을 봐야만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듯이 타로를 통해 기운이나 마음을 비쳐볼 수가 있다. 어찌 보면 타로는 단순한 거울 이상의 그 무엇도 없지만, 거울이 갖는 위상만큼 굉장히 유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자크 라캉이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자신의 모습으로 동일시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거울의 허상을 통해 파편화된 나를 통일된 모습으로 정의 내리는 것이다.

이렇듯 이미지는 우리에게 주체의 탄생을 부여하게 되는데, 정지된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분별하고 상상하며, 실체가 아닌 비춰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환상과 상상으로 얼룩진 우리들의 세계는 해석하기에 따라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욕망은 뭐든 이루고 싶어 하고 전지전능한 기준에 따라 멈춤 없이 역동한다. 열심히 노력했던지 안했던지 더 좋은 것만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은 거울에 비친 예쁘지 않은 내 모습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나를 어떻게든 예쁘게 포장해주고 꾸며주고 합리화시켜 괜찮은 나로 비춰지게 만들어주는 거울상을 가지고 싶다. 그래서 머리를 다듬고 화장을 하고 맘에 드는 옷을 입고 다시금 거울 앞에 선다.

조금은 나아 보이지만, 어느 예쁜 연예인에 비하면 형편없다. 생각을 바꾸고 싶다. 비교 평가된 이야기가 아닌 나만의 것을 거울 안에서 찾아보고 싶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거울에 비친 젊지도 어리지도 생기발랄하지도 않은 낯선 중년의 모습만이 나를 바라본다.

눈을 감고 뒤돌아서 밖으로 나간다. 나를 보고 반기며 웃어주는 사람들을 찾아 거울대신 세상과의 만남을 찾는다. 이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거울이 된다.

타로는 거울이다. 하지만 혼자 보는 거울이 아닌 함께 보며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는 거울이 된다. 78장의 그림 속에서 한 장씩 뽑아낸 9장의 그림책이 동화처럼 우리들의 기운과 마음을 담고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거울을 보듯이 꼼꼼히 설명해준다.

‘자, 보세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게 하는 말처럼 그들에게 이야기해준다. 이렇게 저렇게 개성 있어 당신은 아름답다고. 그리고 그들은 나의 언어 속에서 새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이미지를 담고 간다.

타로카드에 지혜는 없다. 타로는 그냥 비춰줄 뿐이다. 마음, 상황, 관계, 처신, 그리고 역동적인 힘과 능력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냥 그렇다. 하지만 상대방은 나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9장의 그림책을 재밌고 의미 있게 들려줄 이야기꾼을 바라보듯이 내담자는 아이처럼 있다. 그들이 어른이든 어린아이든 자기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재밌어하고 놀라워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역할 놀이들 중에 상대의 거울이 되어 다정하고 친절한 마음으로 마법거울의 목소릴 흉내 낸다. 

▲ 박서연
“거울아, 거울아. 이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사람들은 내게 물어본다. “물론 당신이 최고로 예쁘세요. 그러니 좀 더 큰 용기를 가지고 노력하면서 더 나은 선택을 해보세요.

우린 여태 잘 살았잖아요. 앞으로도 의미와 새로움이 있는 삶만이 멈추지 않고 계속 이뤄질 거예요.” 타로라는 마법거울을 가지고 희망의 목소리를 익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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