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셨어요?”

“어- 그려. 근데 뉘 집 여식인가?”

“네 저 관중이 아시지요? 관중이 둘째 누나예요.”

“권 서방네 둘째 딸이구먼.”

어버이날 고향마을 입구에 당당하고 의젓하게 서서 마을을 지키고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앞에서 윤씨 아저씨를 만났다. 모처럼 뵈니 흰머리에 굽은 어깨가 오늘따라 더욱 쓸쓸하게 보인다. 아버님과 연세가 비슷하여 친구처럼 지내는 분이다. 자식들은 모두 대처에 나가 살고, 몇 년 전 마나님까지 하늘나라로 보내고 홀로 살고 계신다. 뵐 때마다 인사를 드려도 번번이 누구냐고 물어 보신다.

고향집 마당에서는 아버님과 어머님이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열무를 속아내어 다듬고 계신다.

“김치 하시게요?”

“관중이가 김치가 떨어졌단다. 너도 담가서 가져갈래?”

“아뇨 열무김치 있어요. 다음에 주세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어머니는 부엌으로 가시고 용인 남사에 볼일이 있으시다는 아버님을 모시고 집을 나섰다. 아버님과 오랜만에 단둘이 차를 타고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길이 어린시절 소풍날 아침처럼 마냥 신이 났다. 아버님 마른 얼굴과 거북이 등껍질처럼 거친 손등을 힐끔 힐끔 곁눈으로 바라보며...

남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양성으로 넘어오는 만세고개 고갯마루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아버님께서 만세고개의 유래를 들려주셨다. 3.1만세운동 때 남사와 양성과 평택 세 지역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만세를 불러 그 후 이곳이 만세고개가 됐다고 한다. 마침 길옆에 작은 식당이 있어

“아버지 두부김치에 술 한 잔 하실래요?”

“좋지.”

빈대떡과 새우탕 술 한 병을 놓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농을 치며 이야기는 끝이 없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시자 아버님은 지금까지 백 번도 더 들었음직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숙아 내가 세살 때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내 입으로 아버지를 불러본 기억이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네 고모랑 스물 한 살에 혼자 된 어머니 모시고 갖은 고생을 하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렇지만 열심히 살다보니 그래도 아버지 젊어서는 부자소리 듣고 살았다. 자식들 가르치느라고 지금은 내가 가진 게 별로 없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하루도 게으르게 지내지 않았다. 너도 그건 알지?”

“그럼요 잘 알지요. 내가 뉘 집 자식인데 그걸 모르겠어요. 그 유명한 권 서방네 둘째딸이잖아요.”

“그래 맞다 하하하....... .”

빈대떡 붙이던 식당 주인아주머니 곁에서 빙그레 웃으신다.

/권미숙(독서지도강사·상현동)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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