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옥 독립지사·여성광복군 귀향 의사 밝혀
20여 년간 수원 보훈타운서 13평 월세살이
‘3대 독립운동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이기도

 

3대 독립운동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여성광복군으로 활동해온 오희옥 독립지사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고향인 용인에서 삶을 살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광복 70년이 흘렀건만 우리에겐 아직도 낯선 이들이 있다. 여성 광복군. 여성의 몸으로 이국 땅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일제에 무력으로 항거했던 이들. 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을 통해 그나마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그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미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여성광복군은 총 4명. 그 가운데 와병 중이거나 해외 거주자를 제외하고 온전히 우리가 대할 수 있는 여성광복군은 한 명 뿐이다. 그가 바로 용인 출신 오희옥(89·사진) 독립지사다.

1927년 이역만리 만주 길림성 액목현에서 출생한 선생은 전선을 따라 북경, 남경, 광동, 유주 등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가 결성되자 고작 12살의 나이로 유년부에 가입해 가두선전과 연락임무 등을 수행했다. 독립운동 기금을 모으는 한편 일본군대 내 한국인들에 대한 이탈 선전 활동도 했다.

▲ 김구 선생(오른쪽 원 안)과 함께 한 오희옥 선생의 소녀시절 모습(하단 원안).

여성광복군이자 독립지사 오희옥 선생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며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투쟁했던 용인의 자랑, ‘3대 항일독립투쟁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이기도 하다.

굴곡진 현대사에서 가장 시대에 밀착해 살아온 오희옥 선생이건만 영화의 세월은 없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고 했던 자조가 그에겐 현실이었다.

고령의 나이로 수원 보훈타운에 홀로 살고 있는 선생의 집은 열 서너평 월세살이 아파트다. 최근 각종 언론매체에 나와 여성독립군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오희옥 선생. 노구인 그에겐 마지막 소망 하나가 있다.

 “선대들의 고향이며 나의 고향, 용인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고 싶다.”

이젠 부끄러운 마음으로 우리가 답해야 할 때다. “응답하자, 100만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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