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생협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현대의원'

 

▲ 지난 3월 6일 용인의료소비자 협동조합으로 다시 문을 연 '우리현대의원' 의료지노가 직원들. 왼쪽에서 네번째가 심현준 원장,심 원장 오른쪽은 구자용 사무국장.

오랜만에 그 병원을 다시 들렀다. 7년 만이다. 그런데 익숙하다. 여전히 대부분의 환자가 어르신들이다. 진료하는 의사와 간호사 역시 친절하다.

처인구 양지면에 있는 우리현대의원 모습이다. 그런데 실은 1년여 사이에 큰 변화를 겪었다. 개인병원에서 올해 초 313명이 공동주인인 ‘의료생활협동조합’으로 탈바꿈했다.

병원을 설립해 오랫동안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동식 원장이 세상을 뜨고, 심현준(42) 원장을 비롯한 젊은 의료진이 이어받아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어떤 희망이 싹 트고 있는 걸까.

# 이동식 전 원장 유지 받들어 의료생협으로 재탄생

‘현대의원’하면 양지와 원삼‧백암 등지에서 거의 모르는 사람은 없다. 특히 이 지역 노인들에겐 사랑방 같은 곳이다. 원삼에서 보건소장을 역임하는 등 유독 농촌권역 노인들을 정성껏 보살폈던 이동식 전 원장이 병원을 지켰던 탓도 있다. 그런데 지난 해 11월 그가 사람들 곁을 떠났다. 암 발병 확인 후 1년 반 만이었다. 한 동안 병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던 지난 3월 6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름과 새로 꾸린 의료진을 앞세워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문을 활짝 열었다. 용인시 인가 제1호, 홍인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홍인’은 홍익인간의 줄임말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을 담았다. 기존 현대의원에 우리 조합원이 주체라는 뜻도 병원 새 이름에 새겼다. 의료생협을 만들기 위해 앞장서서 발로 뛴 사람은 구자용(51) 사무국장이다.

전 이 원장과의 인연이 그를 의료생협 활동가로 만들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던 그에겐 오래 전부터 거래처였다. “이 전 원장님이 편찮으실 때, 이후 앞날을 걱정하셨어요. 평소 존경해 왔던지라 뭔가 도움이 돼 드리고 싶었죠.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하던 중에 의료생협을 만드는 것이 그 분의 뜻을 이어가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죠.”

처음엔 후임 의사를 여러 명 소개하기도 했다. 이 전 원장은 말이 없었다. 의료생협에 대한 구상을 설명하자, 그때서야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해서 준비 작업은 이미 이 전 원장의 생전부터 시작됐다.

# 개원 3개월…조합원만 두 배로 늘어

의료생협을 추진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300인 이상의 설립동의자가 있어야 했고, 3천만원 이상의 출자금을 모아야 했다. 주변에 경쟁 병원이 있어 조심스럽게 홍보를 하다보니 많은 애로가 있었다. 하지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발기인 모집과 여러 차례에 걸친 발기인 대회를 거쳐 마침내 313명이 모여 총회를 가질 수 있었다. 올 초인 1월 25일이다.

이때부터 진료를 담당할 원장 모집과 개원 준비 등 하나씩 준비해 나갔다. 마침내 4개월 만에 조합설립 인가를 마쳤다. 신임 원장은 심현준(42) 박사다. 서울대 의예과 출신인 심 원장은 그간 여러 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진료를 맡았던 전문의로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스스로 힘든 선택을 했다.

“상부상조하는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의료생협의 지향이 마음에 들었죠. 지역주민과 의료인이 협력해서 주민 건강 증진은 물론 의료 손길이 필요한 분들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는 점도 좋았고요.”

심 원장에 대해 지역사회에선 벌써부터 ‘제2의 이동식’이라는 칭송이 들려온다. 영양제 하나 놓아 달라는 환자에게 “무슨 말씀? 고기 한 근 더 사서 드세요.” 이런 식의 답변도 닮았다. 친절은 기본이고 모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익은 그 다음이다.

불필요한 과잉진료와 과다투약도 하지 않는다. 치료보단 예방이 우선이다. 질병과 치료과정에 대한 설명도 충분하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의 신뢰가 쌓이고 조합원은 어느 새 2배로 늘었다. 6월 현재 600명이 넘는다.  

# 조합원과 지역사회 협력사업 활짝

“페업 후 5개월 만에 개업을 했는데, 단 1주일 만에 과거 진료 환자 수를 회복했어요. 다들 놀랐습니다.” 사랑‧협동‧나눔으로 만들어 가는 의료활동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까. 지역사회의 관심은 뜨거웠다. 설립 과정에서 전문기관 컨설팅을 받은 결과 일정기간 적자기조가 예측됐지만 실제는 달랐다. 올해부터 흑자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

그럼에도 조합 집행부는 한푼 두푼 모아 만든 의료생협 정신을 살리기 위해 더욱 다부지게 마음을 먹고 있다. 1층 진료실과 2층 물리치료실을 운영하면서 유급 직원은 최소화했지만, 일은 늘었다. 특히 조합원을 위한 프로그램을 벌써부터 시작하고 있다.

지난 5월 가정의 달에는 조합원들에게 비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예방접종과 백신을 나이별로 차등해 무료 또는 할인 제공했다. 앞으로 매달 조합원을 위한 행사를 계획 중이다. 지역주민의 건강증진 또한 의료생협의 목적사업인 만큼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꿈이 현실이 됐어요. 예방 의료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동시에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주인이 됐으니 행복한 일이죠.” 병원에서 만난 한 생협 조합원의 말에서 자긍심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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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아있는 이동식(1929~2014) 전 원장 
“농촌 노인과 어려운 이웃을 잊지 말라”

영원히 살아있는 이동식(1929~2014) 전 원장  “농촌 노인과 어려운 이웃을 잊지 말라”

 

현대의원이 ‘용인시인가 1호’ 의료생협으로 재탄생했다. 지난 3월 6일의 일이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우리현대의원’으로 병원 문을 다시 열자, 가장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노인들이다. 이유는 뭘까. 이들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이동식(1929~2014) 전 원장을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적한 소음이었던 양지에 현대의원을 개원해 처인구 양지면과 원삼, 백암일대 주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그는 지난 가을 세상을 떴다. 당시 84세였다. 이 전 원장의 말년 모습은 존경받는 의료인의 전형이었다. 암 선고를 받고 투병을 하던 와중에도 조금이나마 기력이 있을 땐 어김없이 그의 발걸음은 진료실로 향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마침내 더 이상 환자들을 돌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수십 년 마주했던 시골노인들이었다. 그들이 여전히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값싸게 편안하게 받게 할 순 없을까. 그 마음을 알아차린 주변 지인들은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소개했다.

의료생협은 상부상조의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한 소비자들이 스스로 의료기관을 설립하고 자신 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이 전 원장은 이런 정신을 높이 샀고 흔쾌히 동의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임대를 원했던 여러 의사들이 그의 유가족을 찾아와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유가족 역시 이 전 원장의 유지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날 ‘홍인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우리현대의원’으로 여전히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경은 여기에 있었다.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으로 1951년 1.4후퇴 때 단신 월남한 이 전 원장. 해주의학전문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월남 후 머슴을 하면서도 결코 버릴 수 없는 꿈인 의학공부를 마쳐 의사가 된 이동식.

1980년 처음 용인과 인연을 맺은 후 원삼면 보건소장을 거치며 농촌 노인들의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의술의 참 의미를 깨닫고 특히 노인들에 관심을 가졌던 의사. 그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이처럼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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