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흥읍 지곡리 두암산(斗巖山) 품에 안기듯 서 있는 사은정은 본래, 조선 중종조 명현이며, 동방사현(東方四賢)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하여 중종 때의 유학자로 식견이 높기로 유명했던 방은(方隱), 조광보(趙光輔), 기묘명현 회곡(晦谷) 조광좌(趙光佐), 그리고 목은 이색의 후손으로 조광조와 함께 옥에 갇혔다가 화를 입은 음애(陰崖) 이자 등 4현들이 모여 장수강학하던 유서깊은 곳이다.

정범조가 지은 사은정기에 “사은정은 문정공 정암 선생이 도를 강화하던 곳으로 정자는 구성의 치소 남쪽 쥐봉과 보개산 중간에 있는데 높은 벽과 층층한 바위, 맑은 시내와 구부러진 돌의 승경(勝景)이다”라고 하였다.

유애 이자가 더불어 보낸 글중에 정암, 방은, 희곡 형제와 음애가 도의로서 사귐을 맺어 서로 더불어 즐거워 하였고 또 선대 산소와 전원이 가까운 곳으로써 한양 남쪽 용인에 터를 잡아 정자를 짓고 “사은”이라 하였으니 대개 농사짓고, 나무하고, 낚시질하며, 나물 캐는 네가지의 뜻을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사은”이란 중종조 기묘 명현 4분이 은거하여 4은(謝恩)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경, 신, 조, 채 네가지의 낙을 취하여 은거한데서 비롯된 명칭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용구, 조철, 정범조, 민종현 등 선비들의 묵적이 중수기에 남아 있고 2백여년 전에 현액한 4은정 현판이 현존한다. 이는 옛부터 전해오는 유일한 정자로 문헌 속에서 이와 같은 기록을 함께 찾아볼 수 있는 곳으로 정암선생을 비롯한 당시의 신진사류들이 주창하던 왕도정치, 지치주의, 철인군주정치 이념을 태동시킨 요람이자 이들이 정계에 진출하여 개혁과 이상정치를 신현코자 청운의 꿈을 싹틔웠던 유적지로서 한번쯤은 들러볼 만한 명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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