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3년 정사(1497), 용인현령 김우(金祐)가 객헌(客軒) 동쪽에 정자(亭子) 하나를 세웠다. 그리고 정승을 지낸 안침이 이 정자의 명칭을 양벽정이라 이름 하였다.

1524년 10월 17일 이 정자에서 중종 임금님이 양노연을 행하고 종재를 공궤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홍귀달(洪貴達)이 지은 양벽정 기문에서는 “북쪽에서 흘러내리는 산골 샘물을 끌어서 동쪽으로 인도하고 담을 뚫어서 마당안 연못에 흘러들게 하였는데 못 깊이는 한 길 쯤이고, 세로는 두어발 가로는 세로의 곱절이며 물이 맑아 옥 같구나” “뜰에는 고목이 띄엄띄엄 서 있어서 서늘하게 그늘져 내 보기에 아름답고 남쪽과 북쪽에서 오가는 이들이 휴식할 곳이 있음을 기뻐하니 나라의 태평한 기상을 이에서 보았네”라 한 것이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남아 있다.

또 사온정기(四隱亭紀)를 보면 “정자를 세우는 이유는 산수(山水)가 아름답기 때문에 짓는 것이며 인물의 번성함으로 이름을 붙힌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건축물은 풍류를 위한 유흥상경(遊興常景)의 용도뿐 아니라 전시에는 관측지 기능도 갖게 되는데 정자의 대개는 풍류승경을 위한 용도이거나 휴식상경의 용도가 더욱 짙다.

용인의 노고산 정상에 그럴듯한 정자 하나를 세우고 그 명칭을 용인정(龍仁亭)이라 하여 현판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은정기의 기록에 있듯이 정자는 산수가 아름답기 때문에 짓고 인물의 번성함으로 그 이름을 붙힌다 하였으니 그 정자의 명칭이 풍류상경의 운치에 적합한 이름인지 한 번 재고해 보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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