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한 달에 한두 번은 급식당번으로 학교를 찾는다. 그런데 2학기도 중반이 다 된 지금까지 교실에만 들어가면 내내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식판을 들고 하나같이 “밥 조금만 주세요. 김치는 안 먹어요…” 하는 아이들. 절반 가까이 그대로 남는 밥과 반찬을 식당으로 돌려보내고 나면 다음은 청소 시간. 평소 도서관이나 집에서 청소하는 데 익숙한 큰 아이가 엄마 왔다고 신이 나 빗자루를 꺼내들지만 번번이 선생님이나 다른 학부모들에게 방해하지 말고 나가 놀라며 쫓겨나고 만다.

아이들에 섞여 교문을 나설 때면 요즘 아이들은 골목길과 심부름 문화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 아쉬움이 남는다. 아침이면 가방을 메고 친구네 집에 들러 손을 잡고 학교에 가고 동네 아이들과 놀다 저물 무렵이면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와 된장 끓는 냄새에 이끌려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그 따뜻하고 정겨운 풍경은 차츰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사라져버리고 아이들은 교문 앞에서 학원 차로 뿔뿔이 흩어진다.

골목길에 어린 추억이라면 빠뜨릴 수 없는 게 심부름이다. 골목 어귀 구멍가게에서 두부나 콩나물을 사오는 일은 그 시절 어린아이였던 우리들에겐 자연스런 일상이었다. 하지만 곳곳에 대규모 할인매장들이 세워져 집집마다 차를 타고 나가 한꺼번에 최소한 일주일치씩 장을 보는 가정이 늘면서, 아이들이 구멍가게에 반찬거리를 사러 심부름을 가는 건 좀처럼 드문 일이 되고 말았다.

언젠가 하버드 대학에서 특별히 이기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니 어린 시절에 집안 일을 도운 경험이 거의 없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인간의 성장과정은 시기마다 적절하게 성취해야 할 과업이 있다. 한 가지에 치중하다 보면 다른 어딘가에 불균형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며칠 전, 일반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공부방의 한 아이를 데리고 멀리 공동체학교에 다녀왔다. 낯설어 겉도는 아이를 그냥 떼어놓지 못해 애를 태우는데, 마침 다음 시간이 농사수업. 같이 팔을 걷어 부치고 한나절 손톱이 까매지도록 고추를 따다가 어느새 그곳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들을 건강하고 튼실하게 키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사랑은 어떤 것일까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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