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개구쟁이였던 나는 딱지치기, 구슬치기, 담타기를 비롯하여 골목대장 등을 하며 지냈다. 그러다보니 실수가 많았고 ‘여자답지 못하다’‘덜렁거린다’‘성격 좋다’‘머슴애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말들이 분신처럼 따라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여자 반, 여중, 여고 등 여자들과 함께 생활한 나는 이런 모습이 오히려 여자친구들과 어울리는데는 그럭저럭 지낼 수 있는 명랑함으로 인정을 받았다.

사춘기 시절 이렇게 자유분방하던 나에게 부모의 꾸짖음이 많아졌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지적하는 부모님의 말들이 정말 듣기가 싫었다.

상대적으로 친구들은 언제나 나를 인정해주고 고쳐야 할 점을 말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와 함께 놀아 주는 아이들이 내 주위에는 언제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의 말씀에는 귀 기울이지 않게 되고 자신을 만나지 말라고 하는 말까지 수용하고 이해해 주는 친구가 최고의 상대가 되어갔다.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 기뻐하며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부모가 답답하게만 느껴졌고 서로 상처가 되는 말을 하며 멀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님은 꾸중도 없으시고 나를 다르게 대하기 시작하셨다. 나를 포기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 나를 부르시더니 “나는 너를 믿는다”라고 말씀하시는게 아닌가. 속으로 “에이 설마”하면서도 평소와 다른 부모님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어느날 친구들이랑 놀다가 많이 늦어 혼날 것을 예상하고 겁을 먹고 집으로 다가섰는데 다른 때 같았으면 “왜 이렇게 늦어”하고 한소리에 벌까지 받았을 텐데 대문앞에서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늦어서 많이 걱정했다, 들어가자”라는 말씀만 하시는 게 아닌가.

그 사건이 있은 후 나도 모르게 조금씩 부모님에게 관심이 기울여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예전처럼 간섭도 비평도 안 하시고 그냥 나를 봐 주셨다. 물을 엎질러서 실수하면 인상이 당장 찌푸러지면서 “여자갚 하면서 소리치던 아버지는 “옷은 괜찮니, 얼른 걸레 갖다가 닦아라”하는데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 후 나는 부모님의 또 다른 마음을 느끼기 시작했고 부모님이 보시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적으로 화나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성실하고 열심히 사시는 분이며 나를 위해 고생을 하시는 것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동안 꾸짖고 화만 내시고 나를 인정해주지도 않는 부모라고 생각하여 원망하였던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난 자신에 대해서 조금씩 안도감이 생기면서 자부심도 생겼다.

이렇게 나의 방황을 혼내시고 달래시다가 인내심으로 참으시면서 나를 기다려 주시고 포기하지 않으신 분들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에 대해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도 부모와 아이의 줄다리기를 지켜보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길들이려는 부모님의 여유없는 모습과 부모로부터 탈피하여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무조건적으로 반항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서로의 줄다리기가 큰 상처없이 조절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상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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