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희망과 보장도 얻을 수 없는 듯이 암당 해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는 현실에 일체의 노력을 쉽게 포기하고 만다. 그러한 노력조차 허망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청준의 작품은 그 작품 속에서 철저히 현실주의를 추구하는 듯 하지만 비현실적인 것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그리고 있다. "당신들의 천국"에서의 조백헌 원장과 이상국 과장 그리고 황노인과의 갈등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청준은 날카로운 메스를 들었고 분명 우리는 어딘가 난도질 당한 부분이 있다.

문둥이들의 섬 소록도, 이곳에 부임해온 조백헌 원장은 이 섬을 나병 환자들의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의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불신과 회의에 가득한 절망의 섬 소록도에 그는 운명처럼 고난을 이겨가며 섬과 싸움을 시작한다. 마치 상록수를 고쳐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근대 계몽소설 같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이 작품의 계몽 대상은 그런 영웅들에 대한 계몽이다.
불신의 벽을 허물지 못하는 조원장에게 황노인은 이런 말을 한다.
“자유보다도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하지만 병든 사회 속에서 개인은 고립되고 전체를 이루기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병든 사회는 현실서 개인은 고립되고 전체를 이루기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병든 사회는 현실과 초현실,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형식과 내용, 부분과 전체, 특수와 보편의 엄격한 이원론을 신화처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강요의 효과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려는 헛된 노력에 몸을 바치느니 차라리 세계와 완전히 절연된 공간 속으로 후퇴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장 사적인 영역을 충실히 지키는 것만이 타락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유일한 것인양, 그것이 종교든, 예술이든, 또는 섹스든 이것이 요즘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청준은 작품의 행간에 "사랑을 통해 자유를 말하고 자유를 통해 사랑을 얻을 수 있다면..."하는 그의 짙은 미련을 깔고 있다. 다만 조원장의 입으로는 우리들이 그토록 부정하는 동상의 또 다른 동상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청준의 작품을 높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포스트모던식의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품은 전체와 단절된 사적인 영역의 긍정만은 아니다.

삶의 터전을 같이하는 인간들 속에서 사랑과 자유를 느끼고 호흡하기 위해 그들의 운명을 받아들였던 조원장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데올로기나 인생의 한 지향점이 아닌 현실 삶의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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