싣는 순서

 

“돈 없이 컷트 할 수 있을까요?” 멜라니레츠 회원 애니가 토니의 머리를 잘라주고 지역화폐 ‘번야’를 받고 있다.
1. 지역화폐에서 대안을 찾다
2. 지역화폐공동체<1>
3. 지역화폐공동체<2>
4. 지역화폐공동체<3>
5. 호주의 레츠<1>
6. 호주의 레츠<2>

호주는 레츠가 활성화된 국가다. 현재 호주에는 200여 개 이상의 레츠 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호주 최초의 레츠는 1987년 퀸즈랜드 멜라니의 작은 공동체에서 출발했다. 운동가 질 조던이 지역화폐의 기본 모델을 창안한 캐나다 마이클 린턴의 영향을 받아 시작했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멜라니레츠’ 회원들을 만나 수 십년간 레츠를 거래할 수 있는 비결을 들어봤다.

호주 퀸즈랜드 멜라니는 인구 400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동네다. 용인시와 비교하면 한 개 읍 ・ 면 ・ 동 규모다.

1970년대 이 지역은 ‘죽어가는 마을’이었다. 목재로 생계를 유지하는 마을이었지만 벌목이 성행하면서 산림이 줄고 낙농업 역시 쇠퇴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 당시 인근 브리즈번에서 거주하는 대학생들이 대안적인 삶을 찾아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은 다시 활기를 띄었다. 대학생들이 점점 몰려와 자리를 잡았고 야채가게, 은행 등이 생겨 지역경제도 순환되기 시작했다. 또 예술가들이 거주하면서 말레니에는 크고 작은 문화 행사가 열려 여행객들의 소소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멜라니 회원들이 번야를 주고 받은 거래 내역
처음 멜라니에 레츠가 도입된 것은 지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 멜라니에 정착한 대학생들은 생태친화적이며 지속가능한 거주지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고 캐나다에서 레츠 시스템을 배워 온 질 조던이 마을회의 때 지역화폐에 관한 생각을 제안했다.

“여러분, 돈 없이 공연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그 날 모인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 수 백여 명은 돈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레츠에 적극적으로 동의한 뒤 회원으로 가입했다.

멜라니레츠에는 현재 이 지역 인구의 10%가 넘는 600여 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으며 매월 레츠에 참여하는 회원은 200여 명을 웃돈다.

멜라니레츠의 화폐 거래 단위는 지역에서 유명한 나무 ‘번야(Bunyas)'에서 따왔다.
1번야를 흔히 1달러로 생각하지만 거래 당사자간 합의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지기도 한다.

 

관계의 기쁨을 누리는 마을 주민

 

20여 년 넘게 레츠 거래에 참여하고 있는 안줍. 고령이지만 레츠 소식지를 통해 거래물품을 확인하고 회원들간 우정을 쌓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멜라니에 레츠를 도입한 질 조던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언니 안줍(70)은 레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안줍은 1990년도에 멜라니로 이사한 뒤 처음 레츠 거래에 참여했다. 2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레츠와 함께 한 것이다. “이사 올 당시 레츠가 막 시작됐어요. 낯선 곳에 이사를 왔지만 레츠를 통해 적응하기 쉬웠던 것 같아요.”

안줍보다 1년 늦게 레츠 회원으로 가입한 카멜(61)은 개인사업을 레츠와 접목시키기 위해 사무실 자원활동가로 나섰다. “지금은 사업을 접었지만 레츠에 가입할 당시 개인 보트사업을 했어요. 보트를 대여 해 줄 때 절반은 기존 화폐로 받고 나머지 절반은 레츠로 거래했어요. 아이가 4명인 미혼모는 돈을 주고 보트를 빌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번야를 사용해서 아이들과 보트를 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카멜처럼 멜라니에서 창업을 하려는 주민들은 번야로 거래의 경험을 쌓고 자신이 붙으면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흔하다. 또 자신의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레츠를 활용하고 있었다.

20여 년 넘게 레츠 거래에 참여하고 있는 카멜. 고령이지만 레츠 소식지를 통해 거래물품을 확인하고 회원들간 우정을 쌓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말레니레츠 회원들은 별도의 직책을 갖고 활동하지 않는다. 모든 회원이 레츠 회원으로 가입한 상점에서 만나고 게시판, 소식지 등을 확인하면서 거래를 하고 있다. 처음 가입할 때 기존 화폐 10달러를 내고 1년에 한 번씩 재가입비 5달러와 15번야를 회비로 낸다. 기존화폐를 받은 이유는 최소한의 사무업무를 위한 비용 마련 때문이었다. 이렇게 일주일 간 회원들이 거래하는 양은 1800번야. 도시 규모에 비해 회원수와 거래량이 많은 편이지만 이들이 소도시에서 가장 오랜 레츠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관계’였다.

이날 카페에서 만난 애니와 토니는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쉽게 거래를 했다. 애니는 토니의 머리를 잘라주고 번야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거래내역을 장부에 꼼꼼히 기록해뒀다.

이렇게 정리된 회원들의 거래내역은 지역사회교환체계 CES(남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온라인 레츠관리시스템)에 입력된다. 2008년 도입한 이 시스템으로 멜라니 레츠는 다른 도시와 교류 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 시드니레츠, 브리즈번레츠 또한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카멜은 “레츠로 거래를 하면 갑자기 다리를 다쳐 병원까지 혼자 갈 수 없는 사람이 차량을 제공하는 회원에게 연락만 하면 되고 장보기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레츠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기쁨을 주고 돈 없이 살 수 있다는 마음의 안정감을 준다”고 말했다.

멜라니레츠에서 거래되는 품목은  마사지, 정원가꾸기, 저녁식사하기 등 수백가지가 넘는다.

 


빚지고 살 일 없는 지역화폐

한 카페 직원 베브는 번야로 급여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 레츠 가맹점들이 가장 고민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회원들로부터 레츠를 받아도 쓸 곳이 없는 것이었다. 멜라니레츠는 다양한 방법으로 레츠 거래를 활성화 시켜 나가고 있었다.

회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한 카페 직원은 번야로 급야를 받고 있다. 베브는 번야로 받는 것을 매우 만족해했다. 또 이들은 새로 사는 것보다 고쳐 쓰거나 배워서 하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무엇을 고치고 배우려면 고쳐줄 사람과 가르쳐 줄 사람을 찾아야 해요. 번야를 지급하지만 먼저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죠. 이러한 생활을 하다보면 빚지고 살 일이 없고 자연스럽게 경제적으로 안정감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러한 방법은 과도한 마이너스나 플러스가 되는 현상을 해소하는 기능을 한다.

수십여년간 멜라니 주민으로서 레츠 회원으로 살고 있는 안줍과 카멜은 “레츠는 우정을 쌓는 일이며 지역에서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생각”이라며 “인생의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주는 삶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들은 “레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소통이며 이것을 위해 호주의 레츠는 연례적인 컨퍼런스를 통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자문 사회투자지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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