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대외협력실장이 한밭레츠 운영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싣는 순서

 

1. 지역화폐에서 대안을 찾다
2. 지역화폐공동체<1>
3. 지역화폐공동체<2>
4. 지역화폐공동체<3>
5. 호주의 레츠<1>
6. 호주의 레츠<2>

1999년 10월 대전 한밭레츠는 지역주민 스스로 ‘두루’라는 돈을 발행해 기존 화폐 대신 사용해 오고 있다. 현재는 600여명의 회원이 1년에 1만5000건 이상의 품앗이 나눔을 하고 있으며 두루 거래금액이 3억원에 달한다.

품앗이 게시판, 품앗이 만찬, 품앗이 학교, 물품공유소 등을 운영하며 지역에 뿌리내린 한밭레츠의 저력은 무엇일까.

IMF를 지역 안에서 스스로 극복

한밭레츠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서로가 삶에 필요한 것을 드러내놓고 이웃과 함께 나눔을 통해 생활비용을 줄이면서도 좋은 도시 공동체를 만들어보고자 시작한 일이다. 이러한 일은 대전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의 크고 작은 공동체로 퍼져나가고 있다.

지역품앗이 한밭레츠는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닌 공동체로 여긴다. 서로가 제공할 것과 요청할 것을 공동체에 공개해 필요한 곳에 적절한 노동과 시간, 재화가 머물수 있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이를 위해 ‘두루’로 거래하고 삶을 공유하며 나눈다.

한밭레츠 김성훈 대외협력 실장은 “식·의·주 기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거래는 물론 의료, 재활용, 교육, 서비스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과 재화를 교환할 매개체로 두루를 사용하고 두루는 다자간 품앗이로 구성돼 있다”며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꾸준히 성장해 온 지역통화 운동단체로 전국의 각 마을과 단체에 지역통화운동을 소개하고 2008년 개발한 품앗이 놀이는 지역 곳곳에서 시연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전의제21추진협의회는 한밭레츠 탄생의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 ‘꿈의 도시 꾸리찌바’의 저자 박용남씨가 사무국장을 맡고 있을 당시 지역화폐와 관련된 문서를 번역해 회원들에게 제시한 것이 계기가 됐다. 공부 모임을 시작한 회원들을 중심으로 70여 명이 모였고 2000년 2월 한밭레츠는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한밭레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체가 있다. ‘두루’가 거래되면서 ‘민들레의료생협’과 ‘꽃피는 학교’(구 푸른 숲 학교)가 만들어졌다. 2002년 4월 창립한 대전민들레의료생협 조합원 303명 중 150여 명이 한밭레츠 회원들이었으며 의료생협 창립 다음 해인 2003년 3월, 한밭레츠 회원들이 대안학교 준비모임인 ‘두루학교’ 인터넷 카페 활동을 시작했고 1년간의 활동을 거쳐 ‘꽃피는 학교’로 바뀐 ‘대전 푸른숲 학교’의 문을 열었다.

한밭레츠에도 시련은 있었다.

창립 이후에도 처음 기대했던만큼의 거래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김성훈 실장은 “현행화폐제도가 인간과 생명,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맹목적인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작동해 그 폐해가 심각하다고 여겨 이에 대항하는 대안경제운동으로 살림의 경제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공동체 운동을 펼쳐나가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면서 “그 가운데 하나가 지역화폐 운동이었지만 이 시스템을 지역에 도입하는 일은 대전의 특수성 때문에 결코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벌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기존 화폐제도의 오랜 관습에 많은 회원들이 길들어져  먼저 거래에 나서겠다는 생각 대신 누군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바라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이런 소극적인 태도로 거래건수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서로의 품을 교환하는 품앗이 게시판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거래방법을 학습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거래방법을 학습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품앗이 만찬’을 열었다. 주민들이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거래방법을 학습하는 장이었다. 참여 방법은 정말 간단했다. 품앗이 만찬 참여자들이 3가지를 준비해 오게 했다. 그 중 하나가 본인이 먹을 음식 외에 2~3인 분의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고 싶은 수공예품이나 재활용품을 가지고 오며 자신의 장기를 펼쳐 놓는 것이었다.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주민들은 친해졌고 가져온 물건은 두루로 직접 거래했으며 그 안에서 관계가 형성됐다. 반면 거래자나 거래품목이 다양하지 않다고 인식한 회원들은 한의원, 레스토랑 등 안정적인 거래를 제공할 수 있는 회원 업소의 가입으로 신뢰를 높여 나갔다.

“지역화폐가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을 줄 수 있게 되면서 거래횟수가 증가됐어요. 품앗이 만찬 등을 통해 서로 친숙해진 관계가 전제되어야만 거래가 성사되는 것을 보면서 거래 활성화의 중요한 요소는 공동체 관계 형성이라는 것을 학습하게 됐어요. ”

어려움을 딛고 인간 관계로 도약한 한밭레츠의 실천 활동은 견고해졌다. 아파트 에서도 레츠가 시도됐다. 
대전 대덕구 행복 아파트는 ‘행복’이라는 지역화폐를 스스로 발행하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품앗이 게시판’을 설치했다. 그 게시판에는 제멋대로, 제각각의 글씨가 쓰여 있다. 

품앗이 사랑방은 낮에 마을 어린이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저녁이 되면 각종 취미와 강습모임이 이루어진다. 새로 이사 온 203호 신혼부부가 쭈뼛거리며 품앗이 사랑방 문을 열고 어색한 인사를 하면 204호 혜란이네가 아는척을 하며 사람들에게 소개를 했다. 음식배열과 자리배치가 끝나면 모두 모여서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품평해가며 만찬 식사를 즐겼다. 405호 맞벌이 가족 미영이네는 음식 준비를 못해와 과일을 내어놓고 밥과 국은 공동으로 준비했다. 

한밭레츠는 품앗이 만찬외에도 품앗이 학교, 물품공유소, 농산물직거래, 음식사업단 두루잔치, 이동영화관과 교육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품앗이 놀이’는 지역화폐를 시도하는 다양한 공동체로 확산되고 있다.

 

대전 대흥동 좁은 골목길에서 열리는 짜투리시장은 모든 거래를 ‘두루’로 하고 있다.
돈 보다 중요한 이웃이 희망

돈 보다 중요한 이웃이 희망
품앗이 놀이는 2008년 1월 추진됐다. 지역통화는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품앗이 놀이는 시스템 설계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어떤 공동체나 쉽게 적용할 수 있어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진 지역통화 시스템중 하나인 레츠를 모형으로 했다. 한 지역에 지역통화운동을 하고 싶은 분들이 10명 이상 모였다면 2~3시간의 공동작업(Workshop)으로 바로 이 운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품앗이 놀이는 간단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요청할 것 5가지와 제공할 것 5가지를 적어 이웃과 함께 대화하는 일이다. ­

 

1. 서로 뜻과 마음을 모으고 부르기 쉬운 돈의 이름을 정한다. (마을의 상징, 특산물, 살림계의 비전 등을 담은 말)

 2. 각자 요청할 것을 5가지 이상 적어 모두 발표하고 잘 경청한다.

 3. 각자 제공할 것을 5가지 이상 적어 모두 발표하고 잘 경청한다.

 4. 이 모두를 전지에 붙여 한 곳에 모아 품앗이 목록을 만든다.
 -요청목록과 제공목록을 한데 묶어 정해진 장소에 게시하거나 간단한 문서를 만든다.
 -인터넷 홈페이지나 카페를 이용할 수 있어도 좋다.
 -이 일을 진행할 거래목록 관리자를 정한다.

 5. 요청목록과 제공목록을 대조하여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을 찾는다.

 6. 찾아낸 것 중 하나를 선정하여 제공자와 요청자를 초대하여 역할극을 한다.
 -연락방법, 인사, 나눌 내용 확인, 금액 정하고 합의하기 등을 상황을 주고 직접 역할에 따라 행동해 본다.

 7. 거래 후 계정정리를 위하여 계정관리자를 정한다. 거래목록 관리자와 겸임할 수 있다.

 8. 계정관리자가 왜,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를 계원 모두가 토론하고 합의한다.

 9. 약속된 거래 보고자(주로는 제공자) 가 다시 역할극을 한다. 거래 일시, 요청자, 제공자, 거래품목, 거래금액은 필수 기록 항목이 된다.

 “지금껏 여러 마을의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수십차례 품앗이 놀이를 해보았다. 막상 ‘난 무엇이 필요할까?’, ‘난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적으려다보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삶에 필요한 것이 정말 없어서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어서가 아니다. 평소에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러한 모든 것을 단번에 해결해준다고 믿는 그것, 즉 돈만을 생각해서다.”

김 실장은 품앗이 놀이가 이러한 화폐의 물신화를 뒤집는 과정이라고 요약했다. 처음은 힘들지만 하나씩 하나씩 이웃과 나눌 것들이 떠오르고 이웃에게 무엇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눌 것이 점차 많아진다는 것.

그는 “돈을 떠올릴 때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고 사람이 보여도 이웃이 아닌 나의 고객으로 보이거나, 혹은 가게 사장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품앗이 놀이는 나와 이웃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며 서로간의 우정, 보살핌과 배려의 마음을 보면서 돈을 지우고 돈으로 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보고 그것을 드러내는 이 간단한 놀이는 그 자체로 즐겁고 따뜻한 마음이 든다”고 얘기했다.

다양한 활동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거래를 활성화시켜 나간 한밭레츠는 돈 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 이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김 실장은 “우리 삶의 목표가 돈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하면 새로운 희망과 용기가 생긴다”며 마을 곳곳에 새로운 돈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 새로운 돈은 첫째, 이자를 붙이지 말아야 한다. 이자가 붙는 돈은 많은 사람에게 유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돈을 두고 서로 다투게 된다. 둘째, 이 돈은 필요하면 스스로 발행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인만 돈을 발행하게 하면 돈을 발행하는 사람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게 되기 때문이다. 도시 마을 곳곳마다 이러한 품앗이 공동체가 살아나는 일, 그것이 우리의 꿈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 꿈의 실현을 여러분의 마을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자문/ 한밭레츠 김성훈 대외협력 실장, 사회투자지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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