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절 또는 일본 패전일
그리고 일본군 위안소

커뮤니티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이웃문화협동조합’에서 ‘일본 연수 및 교류’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지난 6일 도쿄로 출발했다. 조합원으로 구성된 ‘일본연수 및 교류단’에는 경희대 시민교육을 수강했던 학생들과 시민교육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자 몇 분도 함께 동행했다.

일본 도쿄와 나가노의 역사자료관과 공동체문화, 일본 NPO, 지역화폐 등을 돌아보는 7박8일의 여정이었다. “일본열도 40.7도 찜통더위로 관측사상 4위”라는 신문기사 보도처럼 습도가 높고 뜨거워 끈적이며 땀이 흘러 연신 수건으로 닦으며 다녔다. 아스팔트 도로는 더 뜨거웠다. 메트로폴리탄 도시 도쿄는 에어컨 없이 살수 없었던 것에 비해 자연환경이 좋은 나가노는 시원했다. 그곳에는 에어컨이 필요 없었다.

침묵을 깬 여성들의 평화자료관 WAM 

▲ 엑티브 뮤지엄에는 아시아 각국의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얼굴사진이 전시돼 있다.
도쿄 도착 첫날 들른 곳 중 하나인 ‘WAM(Woma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 :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액티브뮤지엄)’ 복도에는 일본군 위안부 사실을 고발한 아시아 곳곳에 있었던 피해 여성들의 얼굴사진이 있었다(이름, 얼굴, 피해사례 공개에 동의한 여성들 150여명). 1991년 위안부 피해자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의 첫 용기 있는 고발을 시작으로 김할머니 외 9명이 도쿄지방재판소에 제소하였고, 1992년 1월 한국의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가 시작되었다.

2000년 도쿄에서 여성국제전범법정, 국제공청회가 개최되었다. 2007년 미국, 네덜란드, 캐나다 하원, 유럽연합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가 채택되었고, 2008년 한국 국회 결의 채택, 타이완 입법원 결의가 채택되었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타이, 괌, 인도네시아거주 네덜란드 여성들이 그 피해자였다. 폭력과 강간, 공포와 치욕의 날들이 일본군위안소에서 강요되었다.

위안소 설치는 일본군이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군사적 수단의 하나였다. 벽면에는 일본군이 1931년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1937년의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1945년 패전에 이르기까지, 침략과 점령을 했던 아시아 각지와 식민지하에 있었던 일본군 장교와 병사를 위한 일본군 위안소 지도가 눈에 띄었다.

이 지도는 피해 여성과 구 일본군병사, 군 관계자, 마을주민들의 증언과 공문서, 재판 자료 등 관련 자료를 기초로 하여 ‘액티브뮤지엄’에서 기획, 주관하고 한국의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후원하여 제작되었다고 한다.<사진 참조>

▲ 일본군이 아시아 전역에 설치한 일본군 위안소 지도

얼마나 많은 위안소가 설치되었는지를 보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군대는 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가? 질문이 맴돌았다. 요즘 해외여행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녀오는 하이난섬, 오키나와, 상해, 싱가포르 등에도 일본군 위안소가 설치되었다. 일본 육군성이 집계한 해외 위안소시설이 총 400여 곳이었다고 한다.(중국 280곳, 동남아시아 100곳, 서남태평양 100곳, 사할린 10곳)

WAM은 일본군 위안부제도를 재판한 여성국제전범법정을 발안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힘쓰다 고인이 된 마쓰이 야요리씨의 유지를 받들어 장소를 구하기 어려웠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2005년 8월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아베 총리의 망언과 우익정치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군국주의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와 배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세계시민으로서 양심에 따라 평화롭고 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본 시민들을 만난 것은 가슴 뭉클한 기쁨이었다.

와꾸와꾸 지역 화폐와 공동체

도쿄에서 1시간30분가량 차를 타고 이동하여 간 곳은 물 좋고 자연경관 좋으며 농산물이 풍부한 후지산 자락에 위치한 나가노의 작은 마을이었다.

숙소 근처에 만화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등으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별장도 있었다. 도쿄 등 대도시에서 귀농·귀촌한 사람들 또는 현재 별장으로 쓰지만 정년 퇴임 후 정착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수준 높은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은 마을들이 인근에 많다고 한다. 20년 전부터 도시 출신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 12년 전 ‘지역화폐’를 해보자고 하여 공간을 마련하고, 정기적으로 뉴스레터(와꾸와꾸촌 신문)도 발행하여 100회가 넘었다고 한다. 물론 정부지원은 전무하여 오히려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느리고 느슨한 모임인 ‘와꾸와꾸 지역통화 공동체’를 탐방하고 교류회를 가졌다. 2009년 KBS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이 지역을 취재, 방영하여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와꾸와꾸’라는 말은 ‘신나는’, ‘들썩한’이란 뜻이라고 한다. ‘와꾸와꾸 지역통화’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참가자 프로필’을 작성하여 제출하면 된다고 한다. 작성해야 할 항목 중에 ‘제공받고 싶은(희망하는) 서비스나 물품’,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나 물품’을 기재하는 난이 있다.

이것을 기초로 ‘옐로우 페이지’라고 부르는 ‘지역통화 전화번호부책’인 휴대용 소책자를 발행하였다고 한다. 통상적인 ‘대안화폐’ 활동은 통장을 발행하는데 이곳 와꾸와꾸 지역통화(지역화폐)는 그렇지 않은 느슨한 공동체라고 한다. 활발했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침체기인데 자연농법과 농산물 보관 등의 정보를 나누는 농부회와 석유를 쓰지 않으려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폐목과 나무를 공동구매하는 조직은 건재하게 활동한다고 한다.

‘와꾸와꾸 지역통화 공동체 수확제’도 열린다고 한다. 미국의 유명한 뮤지션 초청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며 포스터를 보여주었다. 설명 후 질문 공세가 쏟아졌는데, 지역 통화 공동체 활동의 보람을 묻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지역 축제나 수확제 때 그렇고 여기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보람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온 여러분들도 보지 않느냐?”고.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에는 원전반대 운동과 일본 평화헌법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저녁 때 교류회에서 만난 몇 사람은 방금 전 후쿠시마에서 캠페인을 하고 돌아와서인지 그 곳 소식과 활동내용을 들려주었다. 60세가 넘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맑고 빛나는 얼굴로 사는 모습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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