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시스 테 고야, <1808년 5월 3일의 학살>, 캔버스에 유채, 268x347cm, 1814년, 프라도미술관 소장. 마드리드, 스페인

사람들은 영웅을 기다리며 산다. 그 기다림은 때로 너무 지쳐서 진정한 영웅을 분간할 수 없게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저 멀리 신화의 시대에는 신이 직접 인간계 간섭을 하거나 신탁을 통해 흐른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어 진짜 영웅을 구별할 줄 알았다.

신이 떠난 후, 인간계는 그저 인간의 욕망만이 그득한 세상이 됨으로써 이제 그 낮은 수준에서 영웅을 가려내야 하는 시련과 마주해야만 했다.

그 정도에서 등장하게 된 영웅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여러 조건에 부합되면 그만이었다. 마치 목마를 때, 우리가 건강에 나쁜지 다 알고서도 마셔버리는 탄산음료수와 같다. 자극적이고 분명 목 넘김에 시원함이 잠시 있는 그 음료수의 유혹에 우리는 근본적인 내 몸의 건강 따위를 금방 저당 잡히고 말지 않는가?

그처럼 이제 내 삶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영웅이란 한갓 욕망을 잠시 채우고 내 육신과 마을을 황폐하게 만들고 떠날 ‘그 어떤 것’으로 대체되어 버린 것이다. 차라리 이제는 우리 모두가 영웅을 그때 그 때 소비하고 있는 꼴이 된 것이다.

소비는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며 동시에 소비순화의 원 운동을 한다. 비슷한 유형의 영웅들이 반복적으로 내 삶 안으로 자꾸 들어오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그 영웅의 자리에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덧씌우고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대통령감이나 국회의원감 또는 크고작은 지방자치단체장 자리를 두고 각축을 벌이는 이들을 두고 그 지지자들이 보여주는 육체적, 심리적 반향들을 보면, 우리는 분명 정치가를 영웅으로 착각하고 미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그 자리는 스포츠 스타에게 내주어야 한다. 이 때 스타란 일단 경기력을 통해 일등을 해야 하고, 분명한 것은 큰돈을 벌고 있어야만 한다.

가끔씩 세상의 미담 주인공을 매체에서 ‘영웅’이라는 약식 명칭으로 꾸며주기는 하는데, 진정한 영웅이란 이제 돈과 권력을 지향하고 쟁취하는 유형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한 몸부림

18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람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 친 그 사건’을 두고 우리는 프랑스대혁명이라고 통칭하고 있다. 그 사건의 발단이 배고픔에서 비롯되었고, 그 혁명은 거의 70여년을 끌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제 자리로부터 수탈하였음에도 세계사에서는 가장 위대한 인간의 쟁취로 여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세상이 그렇게 뒤집혔어야만 하는 이유와 수많은 사람들이 제 목숨을 던져 잡고 싶고, 지키고 싶고 얻고 싶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 모든 목숨을 담보하여 놓고 ‘자유-박애-평등’이라고 쉽게 놓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자유가 무엇인지, 박애가 어떻게 해야 비로소 넓게 두루두루 사랑하는 박애다운 것인지 모른다. 하물며 평등이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기나 하고 살아 본적이 있는가? 난 없다. 넌 있나? 내 기억에 우리 현대사 안에서, 그 옛 날, 프랑스 파리의 어느 골목의 바리케이트 뒤에서, 울면서 공포에 질려 목이 바싹 타들어갔던 그 ‘레미제라블’들이 손을 잡고 마음을 서로 부둥켜안고서 연대하였던 그 평등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우린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는 아직 승리를 위해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

프란시스 데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y Lucientes : 1746~1823)는 화가로서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보여주었던 스페인 궁정화가로서 지위를 누리며 자신의 재능을 한껏 뽐내던 예술가였다. 하지만 그의 예술혼은 물질적 풍요를 버리고 시대의 요청을 들으며 진실을 겨냥하여 묵묵히 자신의 몸 전체를 던져버리는 자유인의 삶을 살도록 강하게 이끌어내었다. 그는 순종했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예술적 사고방식을 두고 우리는 곧 잘 ‘혼’으로 부른다. 마치 하나님이 진흙으로 이겨낸 형상에 숨을 불어 넣어 흙덩어리에 혼이 들어 온 것처럼, 이런 은유적 표현 때문에 ‘혼’은 인간에게 보다 본질적인 것에 매혹당하고, 순종하여 그것을 수행하게 하는 행위와 앞뒤가 맞아 떨어질 때, 그 동력이나 원인을 가리켜 쓰는 말이다.

고야의 예술혼을 뒤흔들어 버린 사건은 당시 프랑스의 영웅이자 유럽대륙에 자유와 새로운 기운을    선포하고 전달한 영웅 나폴레옹이 벌이고 있었던 전쟁이었다. 나폴레옹은 군인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군인의 틀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그의 시대를 ‘나폴레옹의 전쟁 시기’라고 부른다. 그의 전쟁 시기 중 리베리아 반도의 정치적 영향권을 쟁탈하기 위하여 프랑스가 스페인과 대척하여 벌인 전쟁을 ‘반도전쟁’(Peninsular War)라고 한다. 고야는 이 반도전쟁, 아니 훗날 스페인사람들은 스페인 자주독립전쟁이라고 호칭하는 이 침략전쟁을 그림으로 판화로 스케치로 기록한다.

철저하게 그 참혹과 비인간화와 절망과 승리를 현장에서 기록하고 스튜디오에 돌아와 대작으로 남겨 놓았다. <1808년 5월 3일의 학살>은 그 많은 작품 중 하나이다.

그림 속 영웅의 발가벗겨진 모습

그림은 크게 세 덩어리로 구분되어 연결되어 구성되었다. 화면 좌측 밝은 공간에는 처형당하는,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반대편 우측에는 총으로 죽이고 있는 군인들이 잘 질서 잡혀 있다. 이 두 살덩어리들 넘어서 화면 뒤 쪽으로-상단부에는 흑암이 감싸인 마드리드 대성당이, 교회가 있다. 각기 역할이 있고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이 구분은 그림을 읽고 이해하는데 고야의 의도가 너무나 자명하게 드러나도록 이끌어주는 방향타 구실을 한다. 총질을 하는 군인을 묘하면서 고야는 질서 잡혀 정돈된 군인들의 뒷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고야는 이들을 하필이면 화면 우측에 자리를 주었을까? 그 총질에 두려움과 절망에 몸을 맡긴 사람들-농민과 수도승(피 흘리며 죽은 자에게 몸을 숙이고 있는 녹색 옷을 입은 사람)을 왜 그림 좌편에 두었을까? 피안의 세계에는 교회가 있는가? 그런데 피안의 세계가 왜 암흑에 휩싸여 있는가? 많은 미술관련 전문가들이 이 그림에서 두 팔을 벌리고 온 몸으로 폭력의 광기에 맞서 있는 사람이 예수의 은유라고 설명한다.

그는 노란색 바지와 흰 색 웃옷만으로도 이 그림 전체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림을 꼼꼼히 살펴보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의 오른 손에 예수의 성흔처럼 못에 박힌 자욱이 묘사되어 있다. (그림)

그런 해석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다른 해석을 통해 화가 고야의 이야기를 추적해 보자. 고야는 이 그림에 담긴 사건을 철저하게 전체주의(대국민 총동원령을 내려 사람을 국가의 자원으로 여기는 정치체제)의 나폴레옹과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를 온 몸으로 버티어내려는 시민의 싸움으로 보고 있다. 군인들을 묘사하면서 기계처럼 움직이는 어떤 상태 묘사에 치중하고 있으며 색채도 무생물의 색을 부여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학살당하고 있는 사람들에는 자유-평등-박애를 구호처럼 외쳤던 프랑스대혁명의 그 레미제라블들을 연상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두려운 가운데서도 결코 폭력에 굴하지 않고(두 손을 든 남자), 절망가운데서도 결코 행진을 멈추지 않는다. 저 멀리 교회는, 이 학살이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사실임을 알려주는 시간과 공간의 표징이다. 이처럼 고야는 사실을 사실대로 그리고 기록하고자 하였다.

우리는 한 장의 그림으로 한 시대의 영웅칭호를 가진 사람의 발가벗겨진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의 썩은 욕망이 등천하는 냄새를 이 그림은 잡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를 두고 영웅이라고 기다렸었던 그 욕망의 눈가림을 우리는 스스로 고야의 그림으로 고발하는 것이다.

고야는 사건을 기록했지만, 예술혼이 남겨진 이런 그림(작품)은 세계와 시대 그리고 장소를 바꾸어서 동일한 문제를 쉬지 않고 되묻게 만든다. 그래서 이 그림 앞에서 자문하게 되는 것이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영웅을 기다리고 있으며, 우리 시대 어느 예술가가 그 영웅의 참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가? 꼭 예술가만 그것을 찾아내어서 맞서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면 그것과 맞서 있는 그 자유로운 삶이 바로 예술가로서 첫 번째 덕목을 갖추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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