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참으로 팍팍하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더 이상 현실감이 없다. 한 아이의 미래는 ‘할아버지의 재력’에 따라 좌우된다는 농담은 더 이상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이미 친숙하다. 그러나 엄마 친구의 아들, 딸이 되지 못한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 아이들은 그 말 속에서 희망을 잃는다. 할아버지와 부모를 바꿀 수 없는 ‘나’는 이미 세상에서 낙오된 타자가 되고 만다.

“7,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어른들은 그 시기가 암울하긴 했어도 대학만 나오면 취직은 할 수 있지 않았나요? 지금 20대들은 대학을 나와도 갈 곳이 없어요.” 한 20대 청년의 말에 순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편하고 잘 사는 세상이 되었냐고, 너희들이 자유롭게 걱정 없이 살게 된 것은 그 시기에 끊임없이 저항한 우리 덕이라고 어른답게 훈계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청년들 앞에 펼쳐진 세상이 통계가 보여주는 숫자들처럼 환상적이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경제가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GDP(국내총생산), GNP(국민총생산) 숫자들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지만 그 숫자들이 내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1대 99로 대변되는 부의 집중화 현상과 이로 인한 계층의 발생이 상대적 빈곤감 혹은 박탈감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의 청년들은 비관만 하고 있지 않았다. 기성세대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독창적이고 다양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얼마 전 이런 청년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
문탁네트워크와 그 곳의 청년모임 ‘해봄’이 마련한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워크숍이었다. 20대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는 세 단체(단체라는 단어가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이를 대신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대로 쓰겠다)의 대표들이 각자의 활동에 대해 소개하고 현재 그들이 가진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다. 세 단체는 각각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색을 가지고 있었다.

청년둥지  이웃문화협동조합
수원에 근거지를 둔 ‘이웃문화협동조합’(이하 이문협) 이사장이 첫 번째로 어떻게 문화협동조합을 시작하게 되었는가로 말문을 열었다. 수원시에서 주최한 청년창안대회를 계기로 ‘청년둥지’를 만들고 이를 ‘이웃’이라는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시켜 다양한 지역예술프로젝트와 마을화폐 등을 시도하였고, 그 과정에서 마주한 어려움들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문화협동조합을 창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회적 기업을 하면서 본인이 자꾸 ‘사장’ 마인드를 가지게 되더라는 이야기와 자본금이 없는 청년들이 모이다보니 아무리 진정성을 가지고 활동을 하려고 해도 수익이 나지 않아 생계가 되지 않더라는 이야기는 아무리 열심히 살려고 해도 청년들이 세상과 부딪히는 한계를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청년 끼리만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뜻을 같이하는 선배들과 손을 잡고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게 되면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문화, 예술로 이웃과 함께 잘 놀고 잘 살고자 하는 예술가와 문화기획자, 향유자들이 함께 하는 협동조합으로 공정한 문화, 예술 생태계를 즐겁고 신명나게 만들어 보려는 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대안문화아카이브 봄
두번째는 서울 삼청동에 자리 잡고 활동하는 ‘대안문화아카이브 봄:’(이하 대안문화아카이브)의 대표가 발표를 했다. 여기서 ‘봄:’은 ‘보다’의 줄임말로 더 나은 삶, 더 즐겁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독립문화 네트워크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이 단체는 자유롭지만 체계적으로 역할을 나누어 운영되는 것으로 보였다. 공간을 운영하고 프로젝트 수익을 관리하는 공간운영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인적 네트워크와 인프라를 구성하며 중심역할을 하는 기획팀, 생산된 모든 기록들을 저장, 편집, 출판하는 컨텐츠팀으로 나누고 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운영하고 있었다.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다양한 문화 활동을 기획하고 있었는데, 냉장고 같은 버려진 폐가전제품을 이용한 구조물을 인사동에 설치했다가 바로 구청에서 모두 폐기물로 싣고 가버린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굵직한 프로젝트부터 소소한 세미나와 파티까지 정말 젊은이들이 궁금해 하는 모든 것들을 주제로 모여서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있었다.

‘대안문화아카이브’는 세 개 단어의 조합이었는데 바로, ‘대안’은 기성 권력의 틀 밖에서 역사를 작동시켜 온 변증법적 반(反), ‘문화’는 인류가 전승해 온 지식과 도덕, 감성의 총체로 시대마다 다른 필요나 요구에 의해 독특한 형식으로 발현되는 행동 양식과 상징체계, ‘아카이브’는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느슨한 접점에 위치한 개별적 삶의 집합, 관계망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기록과 저장을 뜻한다고 한다.

청년들간의 소통 문화공간 아그리나 
마지막으로 발표한 팀은 ‘문화공간, 아그리나’였다. 처음엔 청년들끼리 같이 모일 공간을 만들고자 시작했다고 한다. 몇 명이 모일 공간, 연주도 할 수 있는 공간, 기왕이면 춤도 출 만한 공간. 이렇게 확대되어 생각보다 넓은 지하 스튜디오를 얻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돈이 없어 한 청년이 자신의 방 값을 투자하고 그 공간에서 먹고 살면서 처음 일 년을 지냈다고 했다. 그렇게 마련한 공간에서 글쓰기, 영어회화, 기타, 댄스 같은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독서 세미나 같은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와 워크숍도 진행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해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지금까지 왔는데 여전히 수익에 대한 고민이 있어 벼룩시장도 열고 강좌도 하고 있다고 한다.

세상과 부딪히면서 하고 싶은 일을 했지만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없음을 직접 경험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타깝기도 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열정을 가지고 세상과 맞서는 청년들을 만나 오히려 기뻤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젊음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을 벗어나 스스로의 꿈을 꾸며 실현해나가고 있는 무모한 청년들이 희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그 때 쏭감독(이문협 이사장의 닉네임)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제 모습이 어땠을까요? 상상이 안 되네요. 힘들지만, 전 지금이 정말 좋아요~!” 이문협 사무국장 소리(닉네임)의 말이다. 소리는 3년 전 대학 1학년일 때 시민교육 과목을 수강하면서 맺은 인연으로 청년둥지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활동하고 있다.
시민교육 과목을 통해 만나게 되는 현장 속에서 제2, 제3의 소리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꿈꿀 줄 아는 그대 청년들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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