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량에 맞춰 생존하는 식생물의 놀이터

▲ 한국석유공사 용인지사 관리구역에 위치한 문수산 습지. 문수산 습지는 윗습지와 아래습지로 나눠져 있다.

생명체뿐만 아니라 무생물도 그럴듯한 이름을 갖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불리고 또 그렇게 역사로 기록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불릴만한 이름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 습지가 빠끔히 머리를 내민다. ‘나 여기 있어요.’

처인구 호동에 위치한 한국석유공사 용인지사가 관리하고 있는 인근 부지에 만들어진 습지. 반경 수백m 안에는 민가조차 없다. 그나마 2011년부터 한국석유공사측이 민간인 출입금지를 이유로 주변에 철망을 쳐 허가 없이 출입조차 못한다. 말 그대로 섬과 같은 공간이다. 그래서일까? 그곳에 관련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석유공사 관계자가 전부일 만큼 사람들의 발길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냥 ‘습지’ 아니면 ‘알고 있는 습지’로만 불린다. 몇몇 사람들이 인근산 이름을 따 만든 ‘문수산 습지’란 용어가 유일한 표현이다.   

문수산 습지. 둑길을 가운데 두고 200여 평 규모의 윗습지와 30여평 규모의 아래습지로 나뉜다. 윗습지는 한국석유공사 용인지사 건립 당시인 90년대 후반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저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지난달 29일 습지탐사에 나선 며느리밥풀팀은 윗습지에서 20여종의 식생물을 찾았다. 뱀 허물이며 개구리 올챙이까지 여느 습지에서 볼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먹이를 찾아 문수산에서 내려온 고라니의 배설물도 발견됐다. 천연기념물 등 희귀종이 은밀하게 생활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주변식생물들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삶의 터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재밌는 것은 아래습지다. 애초 조그마한 둠벙이었던 공간을 석유공사 직원들이 간이어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10여년전 지금의 모습으로 조성했다. 당시 습지는 문수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1급수 계곡물로 가득 채웠다. 일부 직원은 민물고기와 어패류까지 키워보겠다며 집어넣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관심은 점점 줄고 습지는 메말라 갔다. 당찬 욕심에 넣어둔 어패류는 폐사하고 물고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계절에 따라 수량차가 심해 식생물이 서식하기에는 조건이 좋지 않다. 특히 겨울에는 습지 기능을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물이 마르지만 습지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가 말한 바로는 아래습지는 10여년만에 철저하게 습지로 탈바꿈했으며 잠자리 유충 등 수십종의 식생물들이 급변하는 수량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 상태다. 특히, 아래습지 주변 계곡에는 1급수에서 서식한다는 대부분의 식생물이 관찰된다. 끈질긴 생명력을 간직한 아래습지와 생물학적으로 알맞은 위치에서 유유히 흐르는 산계곡의 조합은 더없이 좋은 생태공간인 것.  

이런 문수산 습지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윗습지는 조성 당시 설치한 콘크리트 축대벽으로 인한 식생물이 점점 감소하고 있으며 아랫습지도 간신히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는 어패류들이 더는 살 수 없는 여건이 됐다.  사람들의 추한 욕심과 더러운 손이 닿지 않는 문수산 습지. 하지만 때로는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공존을 위해 우리가 자연에 손을 내밀어야 할 때, 지금이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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