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해드린 것보다 어른들께서 제게 베풀어 주신 것이 더 많지요. 상 받을 자격이 없는데 이런 큰 상을 주시니 과분하네요."

효행에 모범을 보인 효부로 선정되어 지난 4일 시장 표창을 받은 곽영숙(36)씨는 오히려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곽씨는 집안에서 뿐만 아니라 마을(운학4리)에서도 ‘동네 며느리’로 통한다. 결혼한 후 15년 동안 줄곧 한 마을에서 살고 있지만 그가 부모님에게나 마을 어른들에게 한결같이 극진한 것을 온 주민이 다 알고 있기에 붙게된 별칭이다.

곽씨에겐 특별한 효도의 기억이 없다. 다만, 어른의 말씀을 거역한적이 없고 자신이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려고 노력한 것 외에는 드러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아는 주민들은 단 한 번도 시부모님에게 얼굴 붉히는 경우를 보지 못했을 만큼 곽씨의 효행은 몸에 배어 있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대구가 고향인 그는 결혼 전까지 농사일을 해 본적이 없다. 처음 결혼했을 무렵, 두 살 연상부터 열 살 아래까지 다섯 명의 시누이가 모두 미혼으로 대가족이었던 시댁에 들어오면서 시부모님이 해오던 농사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능숙하지는 않아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부모님들도 대견스러워했다. 가족이 마음 맞추어 가며 산 덕분인지 3년 전에는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집을 헐어내고 붉은 벽돌로 단장한 아담하고 깔끔한 새 집도 짓게 되었다.

곽영숙씨는 홀로 되신 친정아버지를 옆 동네에 모셔두고 지난해 돌아가시기 전까지 8년간을 돌보아 드렸다. 세 아이의 엄마로 며느리로 분주한 생활이지만 딸로서의 도리도 그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시아버지 이문용(70)씨가 친구처럼 친정아버지에게 신경 써주는 모습이 큰 위안이 되었다. 불편할 수도 있는 관계지만 양가 부모에대한 곽씨의 정성이 그만큼 지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곽영숙씨에게는 시아버지가 다리를 다쳐 대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시어머니 마저 한 차례의 큰 수술을 받아야 했던 때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른들을 보살펴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분들이 상심하지 않도록 더 마음을 써야 했다. 퇴원 후에도 이천 서울 등지의 병원을 오가며 통원치료를 도와 드리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시부모를 모시는데 나름대로 철칙이 있다. 절대로 말대꾸하지 않고 싫은 내색 하지 않는 것. 그리고 힘겨운 상황도 무조건 참아내는 것이다. 그러다가 갈등이 생기는 것은 경험 많고 이해심 있는 마을의 연장자를 찾아가 상담하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얻어 내기도 한다.

"가족이니까 서로 참아주고 허물을 덮어주며 사는 것이지요. 특별히 도리를 따져가면서 섬기려고 하면 더 어렵지 않겠어요? 꼭 효를 실천한다는 것 보다 가족이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행복한거지요." 30대 며느리 곽영숙씨가 주는 효의 지침이다.

<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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