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가족 13명. 그것도 단 두 명을 제외하고는 대개가 1급 정신장애를 앓고 있어 일일이 씻기고 돌봐야하는 처지인데다 한 달 최저 생계비 300여만원. 장애우들을 맡아 돌보고 있는 ‘한울공동체’ 가장 안성준(34) 전도사의 가계 내역이다.

지난해 6월 연고도 없는 양지면 주북4리에 사재를 털어 터전을 마련한 안전도사는 아내와 자신의 아이, 그리고 무연고로 떠돌던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정착했다. ‘한울공동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가정에는 6∼48세까지의 가족이 모여 산다. 이 중 장애아동은 부모들이 위탁을 의뢰, 함께 살게 됐다. 병력도 자폐, 간질, 뇌성마비, 정신박약 등으로 다양하다.

“장애를 지닌 자식 때문에 부모들이 불화를 겪고 그로 인해 아이들이 심적 불안 등의 2차적 장애를 또 갖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이혼이나 가출 등으로 가정이 파탄나는 경우도 자주 보았습니다. 그 아이들을 우리 공동체에서 맡아 양육하여 가정파괴를 막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아직 방치되어 있는 장애아동이 있다면 속히 저희 집으로 보내 주세요.”

안전도사는 부모들에게 입소비나 후원비를 일절 받지 않고 있다. 돈에 간섭받지 않고 소신 있게 아이들을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장애우들을 보살피는데 있어 그는 10년 넘는 경력을 지닌 전문가다. 스무살 무렵, 유독 장애우들과 관련된 복지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이던 신망애교회를 다니면서 이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년 후, 그 자신이 젊은 나이에 뇌졸증에 걸려 중환자실에서 임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 서서히 꺼져가는 의식을 부여잡고 그는 신에게 매달렸다.
‘한 번만 생명을 연장해 주신다면 장애를 가진 자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습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몸은 기적처럼 완치됐다. 이제 안전도사는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설 운영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비해 그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후원의 손길 때문에 날마다 행복하다고 자랑이다.

“다른 지역은 장애인들을 몰아내려고 하는데 이 곳 주민들은 쌀도 거둬주고 고기도 사다 주고 그럽니다. 남모르게 라면이라든지 생필품을 놓고 가는 이들도 있고, 바로 이웃 가스공급장에서는 몰래 가스통을 흔들어 보고 비어있으면 채워주고 그래요. 이웃들이 우리 집 앞이 어둡다고 시청에 가로등 좀 달아달라고 건의했더니 금방 와서 설치해 주셨어요. 이런 분들의 정성 때문에 힘든 줄 모르겠습니다."

한울공동체에 거액을 희사하는 독지가는 없다. 몇 백원으로부터 시작해서 주머니 사정에 따라 조금씩 성의를 보내오는 이름 모를 후원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용기와 격려를 주는 따뜻한 시선들로 인해 안성준 전도사는 더욱 든든한 가장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욕심은 있다. 애초부터 장애우들에게 여유있는 생활공간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그룹홈을 시작했는데 아직 물리치료실이나 재활교육장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장애인정책에서 조차 소외된 정신지체장애우들의 재활교육 기회를 마련해 실지로 직업현장에서 고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안성준 전도사의 가장 큰 소망이다.

<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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