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을 대표하는 전통식품이라면 무얼 떠올릴까? 아마도 백암순대를 꼽는다면 대부분 머리
를 끄덕일 것이다.
용인의 전통식품인 백암순대를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전국에 판매하는 것은 물론 일본에까지
백암순대의 맛을 알리는 사람이 있다. 박세환씨(44)가 그다.

백암면 고당리 835평의 부지에 170평의 공장시설을 갖추고 있는 그는 하루 생산능력 1톤으
로 연 18억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식품회사의 경영인이다.

현재 (사)한국전통가공식품협회 경기도 지부장까지 맡아 전통가공식품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가 가공식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기까진 사연이 짧지 않다.

당초 그는 농업의 미래를 짊어질 농업인이자 농업지도자로의 빈틈없는 경력의 소유자다. 농
토가 기름지고 넓기로 유명한 백암에서 2만여평에 이르는 벼농사를 지을 정도로 최고의 쌀
농사꾼이 되보자고 했던 그다. 또 80년대 초반에는 시설원예를 2000여평 할 정도였으며 특
히 피망농사는 단일 품목으로는 전국 최고를 자랑할 정도로 규모있는 농사꾼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의 확대와 3차산업으로 의 중심이동에 따른 농업노동력의 부족이 문제였다.
특히 유통과정의 구조적인 문제는 그의 뚝심을 꺾어놓고 말았다.

“우리가 직접 농수산물지장에까지 가지고 올라가 파는 것은 불가능해 중간도매상들에게 넘
기게 되는데 얼마나 장난이 심한지 몰라요. 한번은 묶음당 시세값이 16,000원하는데 8천원만
주더라구요. 절반을 칼질한거죠.”

그는 농산품을 뽑아 차에 싣는 순간부터 내 물건이 아니라는 현실을 절감했고 유통구조의
문제에 분노했다. 그는 결국 하우스를 뽑아 치워 버렸다. 이때 그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
올랐다. 언젠가 농림부 관계자가 제안했던 전통가공식품업이었다.

“91년도에 후계자 연합회일을 할 때‘으뜸 농산물 전시회’집행위원장을 맡은적이 있었어
요. 농업을 짊어지고 가는 세대로서 전통식품, 민속주 외 먹거리 모음전을 갖게 되면서 백암
순대도 출품해 보았지요. 오징어순대니, 아바이 순대니 피창순대 등도 출품했었는데 백암순
대가 가장 잘 팔리더라구요. 여러전시회에서 호평 받은 적이 있었어요.” 농림부 관계자가
찾아왔던 것이 그때였다.

전통식품을 가공해서 상품화하면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큰 농사
꾼이 되어보겠다고 의욕이 불타있었던 만큼 귀담아 듣질 않았다.
농림사업과 관련한 각종 정부지원 사업자료를 찾아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제출했다. 우여곡
절 끝에 농림부 심사를 거쳐 정부지원대상자로 선정이 돼 현재 백암 고안리에 공장을 짓게
된 것이다. 시작부터 IMF환란의 직격탄을 맞는 등 어려운 고비를 넘겨 자리를 잡아가고 있
는 중이다.

백암면 백봉리 입남마을에서 태어나 당시로선 전망이 좋아보였던 죽산상고를 나왔다. 대학
갈 형편은 안돼 농사로 성공해보자고 결심했던 20대 초반의 박세환씨. 그는 각종 농업전문
훈련은 거의 빠짐없이 이수하고 자격증을 따낼 정도로 열정적이고 앞서가는 과학영농의 젊
은 기수였다.

76년에는 상농업의 권위자로 특히 연해주 개발사업으로 잘 알려진 이병화박사가 운영하던
신갈농민학교(일명 청와대 농장)에서 전문 농업인이 되고 싶다는 편지를 써 보냈다. 이박사
로부터 “용단에 찬사를 보낸다.”는 답신이 왔다. 논에서 거름을 내다 그 자리에 호크를 딱
꽂아 놓고 떠나버릴 정도로 열정과 결단의 화신이었던 그다.

또 가톨릭농민회 등과의 인연으로 누구보다 사회문제에 눈을 떴다. 의식있는 백암청년들과
함께 ‘흥사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용인지역사회 운동권의 1세대를 이뤘었다.
이제 그는 투쟁과 저항을 넘어 21세기 새로운 농업대안을 가지고 승부 하고 있다. /우상표
기자



<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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