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가 유난히 힘겨운 사람들, 누군가의 관심 없이는 한겨울 추위에 생존조차 어려운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사회에서 외면 당한 이들이 모여 사는 비인가 사회복지시설의 수용자들이 바로 그들. 정부에서 지원하는 인가시설과는 달리 개인이 운영하는 비인가시설은 용인지역에만 모두 13곳이 자리하고 있으며 장애인, 미혼모, 고아, 무의탁 노인들이 한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들 시설들은 오로지 시설 운영자의 의지와 독지가들의 자발적인 후원에 의탁해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어느덧 2002년의 끝자락,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한 손길을 기대하며 본지는 용인시자원봉사센터의 협조를 얻어 이들 비인가시설 가운데 자원봉사와 후원이 절실한 3곳을 선정, 소개하는 연말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이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의 둥지를 틀기 위해 찾아드는 ‘에녹의 집’(양지면 주북리 917-9·전화 334-2511). 이 곳에는 현재 4명의 할머니와 6명의 할아버지가 고단한 한 생의 마지막을 의탁하고 있다.

함길봉(48)·안명순씨(47) 부부가 운영하는 이 시설은 지난 1월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버려진 두 노인을 식구로 맞아들이면서 시작됐다.

방 두 칸 17평 집은 함 원장 부부와 두 자녀 그리고 노인들이 기거하기에는 협소하기 짝이 없는데 노인 식구는 자꾸만 불어났다. 함 원장 부부는 땅을 도로에 수용하는 조건으로 노인들만이 기거할 수 있는 방 4칸 짜리 시설을 마련, 현재 이 곳에서 10명이 거주하고 있다.

54세부터 92세까지 이 곳에 사는 노인들 가운데 몸이 성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중풍과 치매로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할아버지, 암으로 투병중인 할머니, 정신지체자, 척추장애로 인한 하반신마비 장애인 등 일일이 보살피지 않으면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려운 이들이 대부분이다.

살아온 세월만큼 사연도 많다. 60대 한 노인은 가출한 후 30년 동안 구걸로 연명하며 양지 시내 폐가에서 살아왔다. 병색이 짙어 입소 후에도 매일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중풍과 치매를 앓고 있는 조모 할아버지(74)는 자녀들이 빈집에 버려놓고 종적을 감춰 시설에 오게 됐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온 집안을 대변투성이로 만들어 놓아 시설에서 가장 많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수용자다. 86세의 조모 할머니 역시 노령에도 불구하고 의탁할 곳 없이 홀로 거주해 왔다. 기력이 없어 넘어지는 일이 잦아 주위에서 시설 입소를 주선한 경우다.

시설 수용 노인들은 작은 장애를 가진 이들이 큰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도우며 살고 있다. 그러나 함 원장 부부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목욕이며 식사, 병원 통원 등 매일의 일과만으로도 벅차다. 자원봉사팀이 3팀 정도 비정기적으로 가끔씩 다녀가는 것 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손길이 없다. 부부는 지난 추석에도 전주까지의 귀성길을 일주일전에 서둘러 하루만에 다녀왔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미리 점심 저녁식사를 준비해 놓고 상차림은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에게 부탁했다.

시설 개소 연한이 짧다보니 후원도 거의 없는 실정.

부인 안명순씨는 “필요할 때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는게 신기할 정도”라며 “본래 너무 가진게 없으면 없다는 말조차 하기가 꺼려진다”는 말로 옹색한 살림살이를 표현했다. 당장 올 겨울 난방비부터 걱정해야 하는 처지지만 시설에 들어오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이 회복되어 가는 노인들을 바라보며 함 원장 부부는 힘을 얻고 있다.

처음 시설을 시작할 당시 ‘사업’의 개념으로 오인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조금씩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 격려가 된단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봉사하는 삶에 대해 고민해 왔다는 함 원장은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만큼 고귀한 게 없다”고 말했다.

“시설을 하기 전에는 방송에 나오는 복지시설을 보고 저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막상 시작하고 보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디다. 다 마음먹기 달린 것이지요.”

복지시설에 맡겨지는 노인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에서 함 원장 부부는 더욱 깊숙이 그늘진 곳을 찾아 들어가자고 날마다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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