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은 단지 걷는 길이 아니다. 그 길에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옛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래서 신앙의 길, 역사의 길, 문화의 길을 걷는 취미가 성행하고 있기도 하다. 예로부터 용인은 길로 번성한 곳이다. 과거 보러 가는 서생들의 상경길, 보부상들의 장삿길, 임진년 외적이 침입했던 길 등은 모두 용인을 통했다. 바로 영남대로다. 어디 그 뿐인가. 일제시대 농산물 수탈의 도구였던 수여선 철길도 용인을 관통하며 많은 얘깃거리와 추억을 남겼고, 그 흔적은 일부나마 아직도 남아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길은 오붓한 소로길이다.

깊어 가는 가을,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옛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옛길을 걸을 때 포인트 하나, 그 길에 얽힌 내력을 알아 보라. 그러면 그 느낌은 또 색다를 것이다. 옛길 몇 곳과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반나절 드라이브 코스도 함께 소개한다.


#용인의 옛길

<송문리 ‘반정∼운학동 내어둔’>

차만 다니면 대개 콘크리트 또는 아스콘으로 바닥을 덮어버려 옛길의 운치를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요즘이다. 그런 가운데 드물게 남아있는 길이 송문리 반정 마을에서 운학동 내어둔을 넘어가는 길이다.

반정 마을을 지나면서 늘 느끼는 것이 반정 마을 뒷편 즉 남쪽으로 보이는 산의 오묘한 형상이다. 야트막한 산이 휘감고 있는 가운데 봉긋 솟아 있는 모습이 시선을 잡아끄는데, 그 산이 바로 내어둔에 있는 국사봉이다. 반정마을은 인근에선 드물게 옛 정취와 외양을 비교적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정겨운 마을이다. 마을 안까지는 포장도로이지만 중간부터는 비포장이다. 마을 내에는 관내 최고령에 속하는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을 들인 채 서 있어, 아이들과 함께 갔다면 꼭 들러보는 것이 좋다.

길 양편 들판엔 누렇게 익어가는 곡식과 함께 허수아비도 간간히 보여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다. 이렇게 걷다보면 어느새 산길에 다다른다. 이 옛길의 특징은 산등성이를 깍아 만든 길답게 움푹한 사잇길을 걸어가는 재미다. 물론 수북한 낙옆이 발 밑에 느껴지는 것도 좋다.

본래 이 인근엔 42번 국도가 17번 국도를 만나면서 영남도로를 만들어 대로가 통과했지만 곡돈고개를 넘어 온 사람들이 이 대로로 접근하는데 사용하던 번화한 길이었다. 아직껏 포장도 못한(?) 이 길을 보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 길의 운명도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고림동 ‘이진말∼진덕우물’>

고림동 ‘이진말’은 옛 진터의 변음으로 봉두산이 둘러싸고 있는 마을이다. 봉두산은 예로부터 많은 전설을 안고 있으며, 최근엔 인근 예진마을 아파트 등 신도시 주민들의 등산 겸 산책코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옛길은 바로 봉두산을 가로질러 진덕우물과 이진말을 연결하는 산길이자, 소로길이다. 길은 이진말 뒷편 목골 은방울 샘터로부터 시작한다. 길 양편으론 나무들이 빼곡한 편이어서 혼자 걷기엔 무서울 정도다. 비록 1㎞도 안 되는 짧은 길이지만 낙엽을 밟으며 걷자면 그 오붓한 분위기와 구불구불한 멋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진덕우물 사람들과 이진말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길을 이용했다. 특히 읍내로 학교를 다녔던 진덕우물 마을 학생들에겐 추억의 길이다. 마을명이 아예‘진덕우물 마을’이 돼버린 진덕우물은 본래 금덕정, 또는 진터우물로 불리웠으며 깊은 전설을 안고 있다. 임진왜란 때였다. 왜적이 쳐들어와 건너편 해골(화약골, 현 가스충전소 자리)로 불리는 곳에 진을 치고 아군은 봉두산 밑에 진을 쳤다. 수적으로나 전력상 열세에 있던 아군은 위장전술로 적을 물리쳐야겠다고 판단했다. 속에는 짚을 넣은 노적가리를 잔뜩 쌓고 진덕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을 산 아래에 부었다. 이를 본 왜적은 식량과 물이 풍족한 것으로 판단해, 지레 겁을 먹고 물러갔다.

산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것이 이 우물이다. 평소 사용하질 않아 거미줄이 있긴 하지만 어떤 가뭄에서도 마르지 않는 걸로 유명한 이 샘물로 목을 축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드라이브 코스

<용인-와우정사-곡돈고개-사암저수지-좌찬고개>

드라이브 코스로 대표적인 곳을 꼽으라면 단연 이 길을 추천하고 싶다. 교통량이 그리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가는 곳곳에 먹거리와 문화유산, 그리고 눈요기 감이 널려있다.

마평동 사거리에서 송담대학을 거쳐 시작되는 이 길은 57번 국가지원 지방도로다. 경안천 상류를 옆에 끼고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더욱 시원한 느낌을 준다. 곡돈 고개가 시작될 즈음에 있는 와우정사는 익숙한 코스의 하나다. 열반종의 총본산이기도 한 이 절에는 각국에서 모셔온 불상을 비롯한 불교유물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곡돈고개는 용인에서 가장 멋있는 고개에 속한다. 구불구불한 도로도 일품이지만 고갯마루를 넘어 차를 한켠에 세워두고 바라보는 전경이야말로 과히 용인의 제1경이라 한들 부족함이 없다. 용담저수지와 백암 들판, 그리고 원삼면 대부분이 한눈에 들어온다. 새벽녘이라면 용담저수지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볼 수 있는데, 용인 제1경중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만약 겨울, 눈이 온 날이라면 고갯마루에서 운학동 쪽으로 피어있는 눈꽃이 일품이다.

사암저수지가 있는 용담 세거리에서 좌찬고개에 이르는 17번 시도로 역시 멋진 길이다. 용담저수지가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장차 용인의 대표적 관광자원으로 개발될 예정이지만 저수지 건너편 습지대 역시 주목해야 할 곳이다. 2만여 평에 달하는 이 습지대는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어린이와 함께 여행하는 가족들은 꼭 들러 볼만한 곳이다.


<한터∼광주시 곤지암>

한터와 곤지암을 잇는 코스는 이미 자동차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각광 받던 코스 중 하나다. 한터 계곡 곳곳에 자리한 먹거리 집들은 용인뿐만 아니라 인근에도 알려진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대대리를 지나 용인의 ‘하늘아래 첫 동네’인 정수리에 이르자면 사기막 고개를 넘어야 한다. 사기막 고개는 용인에 남아있는 도로 중 가장 굴곡과 경사가 심해 예스러움을 간직하고는 있지만 운전이 서툰 초보운전자들에겐 ‘공포의 S코스’다.

용인에서 가장 고지대인 정수리는 그런 만큼 재미있는 말이 전해진다. “수원에서 길을 떠날 때 비가 내려도 정신병원고개에 이르면 진눈깨비가 내린다. 그런데 시기막 고개를 넘어서면 하얗게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이 코스는 워낙 한적하고 주위 경관이 빼어나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그만이다. 44번 국가지방도인 이 길은 광주군 도척면 추곡리로 연결되는데 도척면에 있는 저수지 또한 낚시터로서 뿐만 아니라 수면에 비친 울긋불긋한 산의 모습이 절경을 연출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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