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한가위, 그러나 올 추석은 수해를 당한 이웃을 돌아보는 겸허한 마음으로 맞아야 할 것 같다. 수재민들과 수마로 폐허가 된 고향을 찾아야 하는 이들을 위로하며 떠들썩한 명절보다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이웃에 관심을 갖는 따뜻한 추석을 만들어 가야겠다.

명절을 가족만의 모임이 아닌, 이웃과 지역 공동체의 아름다운 축제로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어 훈훈한 한가위 인심을 더하고 있다.

결혼 5년차인 주부 김순옥씨(30·유방동). 서울이 시댁인 김씨는 명절증후군을 앓는 보통의 주부들과는 달리 명절의 보람을 느낀다. 대가족이 모여 북적대는 명절 준비가 분주하고 힘겨운 것은 마찬가지. 그러나 이 가족에게는 특별한 순서가 있다. 아침상을 물리고 나면 시부모님과 4남매가 준비해온‘성금’을 내놓는다. 가족간의 선물을 약소하게 준비하는 대신 설과 추석에 내놓는 성금만큼은 특별히 신경 써서 두둑하게 마련하고 있다. 이 성금은 인근 양로원에 보내기 위한 것.

먼 귀성길에 올라야 하는 식구들이 서둘러 집을 나서면 김씨 부부와 시댁 근처에 사는 형님내외, 시부모님은 미리 여유 있게 장만한 추석 음식을 들고 양로원을 찾아간다. 시설에서 갖는 특별한 행사는 없다. 여느 가정에서처럼 그저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다 한가위 달맞이를 한다.

이 가족이 양로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막내인 김씨 부부까지 4남매가 모두 출가한 5년 전부터. 가족이 모이는 데만 그칠 것이 아니라 보람있는 일을 해보자는 시부모님의 제안에 따라 명절을 쓸쓸하게 보내는 이웃에 눈을 돌리게 됐다.

“음식 장만하느라 고되고 힘들었어도 환한 표정으로 반기는 어르신들을 보면 피로가 풀려요. 무슨 일이 있어도 명절 때만큼은 꼭 양로원에 들리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길러줄 수 있어 봉사를 받으시는 그 분들보다 우리가 사실 더 소중한 것을 얻고 있는 셈이지요.”

이상철 시의원(백암면)의 명절맞이도 남다르다. 이 의원과 백암중·고 출신의 뜻있는 동문들이 모여 만든 ‘한뜻회’는 벌써 10년 넘게 인근 복지시설을 돌보고 있다. 한뜻회의 부부들이 명절에 찾아가는 곳은 관내 장애인시설인 성가원과 세광정신요양원, 미혼모시설인 생명의 집 등 3곳.

열 가정이 모여서 떡과 고기 등 푸짐한 음식을 준비하고 악기를 다루는 이들은 여흥을 위한 순서를 마련한다. 한 고향 친구들이기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설에 들어서면 필요한 곳에 ‘알아서’ 자리를 잡는다. 내 집처럼 수시로 드나들다 보니 고장난 곳, 망가진 곳이 한 눈에 들어오고 연장을 챙기는 손길도 바쁘다.

한뜻회는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연휴에 세 군데 시설을 찾을 계획이다. 이들을 기다리는 그늘진 이웃에게 한 아름 희망을 싸안고.

올 6월 김량장동 용인중학교 앞에 문을 연 이주노동자인권센터는 추석 다음날인 22일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첫 추석잔치를 계획하고 있다.

열악한 산업현장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이미 이방인이 아닌, 우리 이웃으로 자리잡았다. 용인시 관내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연수생을 포함, 1만5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의 출신지는 대부분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 국가들. 의지할데 없는 처지 때문인지 센터에는 일요일이면 보통 20∼30명씩 이주노동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고 점차 그 수도 늘어나고 있다.

아시아 국가가 대부분 추석에 비견되는 명절을 갖고 있는 만큼 이 맘 때쯤 이들 외국인들의 향수병도 짙어지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추석문화도 보여주고 모처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센터에서 추석잔치를 계획하게 된 동기. 30∼40명의 각국 노동자들은 벌써부터 민속춤과 노래를 연습하며 잔치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 날을 위해 2명에 불과한 센터 실무자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김소령 사무국장은 “작은 행사지만 음식을 나누며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절을 만들고 싶다”면서 “우리 사회의 구석진 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마음을 열고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인권센터에서는 추석잔치에 음식을 제공할 후원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도 원하고 있다.(문의 339-9133)

올해도 어김없이 두 아이와 함께 단촐한 명절을 맞게 된 정모씨(42·여). 찾아갈 친정도, 시댁도 없는 그이지만 추석은 기다려지는 날이다. 형편을 알고 있는 몇 몇 이웃 주민들이 과일이며 선물꾸러미를 들고 이야기 보따리를 펼치러 오기 때문. 생색내지 않아도 쓸쓸한 추석을 보내는 정씨 가족에게 세심한 관심을 보내는 이들이 고마워 그는 올해 양말 몇 켤레를 샀다. 감사의 마음까지 꼭꼭 담아 포장해 두고 그는 다가올 추석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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