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인 여덟 살, 다섯 살 두 딸의 엄마인 김모씨(38·고림동).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개인 병원 수간호사였던 그는 대학 졸업 후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생활을 접고 전업주부가 됐다. 유능한 간호사로 후배들에게 신망 받던 그가 갑자기 사직서를 내자 병원 측에서는 극구 만류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사직서를 내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대부분의 기혼 직장여성들은 자녀 돌보기와 직장생활을 두고 고민에 빠진다. 더욱이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가정적·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김씨처럼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오랜 사회 경륜을 아쉽게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여성의 사회참여와 고용확대를 대세로 한 현 시점에서 보육문제는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보육시설 확충은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시설 수뿐만 아니라 여성의 다양한 사회활동에 걸 맞는 보육제도와 보육프로그램이 마련되지 않으면 여성의 사회참여는 한낱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김씨에게 그동안 맞벌이가 가능했던 것은 남편의 내조가 있었기 때문. 중학교 교사였던 남편의 퇴근 시간은 김씨보다 두 시간 빠른 오후 5시. 통근거리를 감안하더라도 30분 이내에 귀가가 가능했던 남편은 어린이집 종일반에 다니는 둘째 아이와 학원에서 돌아온 큰 딸아이를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올부터 남편이 수원지역 고교로 발령이 나면서 보충수업에, 통근거리 연장으로 귀가 시간이 김씨보다 훨씬 늦어지게 되자 난관에 부닥쳤다.

인근 어린이집을 수소문해 보았지만 김씨의 퇴근시간과 야간당직에 맞춰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결국 부모가 귀가할 때까지 아이들은 방치돼야 했다. 엄마를 기다리다 때묻은 얼굴을 씻지도 못한 채 잠든 아이들, 숙제는커녕 준비물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처지 속에서 갈등 하다가 그는 결국 직장을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현재 분당 일산 등 신도시를 중심으로 심야에도 아이를 돌봐주는 24시간 보육시설이 확대되고 있다. 야간근무나 밤샘 업무를 해야하는 맞벌이부부들에게 호응을 얻으면서 그 수요가 늘고 있다. 이들 보육시설에서는 연극놀이 동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 교육의 질적 수준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공공시설에 대한 방과후교실 지원도 각 지자체서 앞다투어 확대하고 있는 추세. 서울시는 최근 방과후 교육을 실시하는 초등학교에 시설설치비 3000만원과 128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안을 내놓았다. 또, 영아방 및 24시간 보육시설 확대와 장애아 통합교육 지원, 보육교사 처우 개선 등의 각종 보육지원책을 발표했다.

과천 안산 안양 등 도내 지자체들도 보육시설에 대한 제도적 장치와 지원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데 비해 용인시는 보육정책에 관한 한 별다른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 뜻 있는 이들은 무엇보다 시가 보육조례 제정을 통한 시설확충과 재원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수원시는 수원여성회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 1년 전부터 보육조례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민간의존 보육에서 벗어나 보육의 공공성을 확보하는데 조례의 목적을 두고 있다.

임혜경 수원여성회 사무국장은 “보육 관련 국가예산이 편성돼도 지자체가 조례제정을 통해 효율적인 보육방안을 마련해 놓지 않으면 예산을 가져다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보육의 질을 높여나가는 노력이 지자체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며 학부모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보육위원회를 구성, 보육에 관한 고민을 정책에 반영하는 창구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여성회는 영유아보육과 초등학교 저학년들을 위한 방과후 교실 설치 등 보육법과 관련된 다양한 대안을 물색하고 있다.

260여 개의 보육시설, 이 가운데 국공립 어린이집은 단 5곳으로 환경마저 한결같이 열악하다. 그나마 일부는 폐쇄될 위기에 놓였다. 인구가 50만에 육박하지만 24시간 보육시설은 전무하며 방과후 교실이 설치된 곳은 단 한 군데에 불과하다.
이것이 용인시 보육시설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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