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은 신사년(辛巳年), 속보다는 바깥이 빛나고, 진(眞)보다는 위(僞)가 더 빛나는 해다. 역사 속의 신사년에는 일본이 미국을 향해 포문을 염으로써 무조건 항복이라는 자멸의 씨를 뿌렸고, 고종은 겉치장만 요란하게 일본에 신사유람단을 파견하고, 청나라에 영선사를 보냈다. 이들은 임진왜란 직전에 파견되었던 김성일처럼 일본의 침략 야욕을 간파해내지 못했다.
정조는 써보지도 못한 수원성 축성에 거금 10만냥을 뿌려댔고, 사도세자는 부왕 영조 몰래 반발 여행을 다녔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도도하던 장희빈이 마침내 꺾인 해이기도 하다.
더 앞으로 가서는 여몽연합군이 2차 일본 정벌에 나선다. 물론 결과는 실패. 태종은 이 해 신문고를 설치하여 백성들의 고충을 듣겠다고 했으나 실효를 거두진 못했다. 전시행정일 뿐이었다.
상해 임시정부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광복군을 결성했으나 그 실효가 없었고, 독일이 모스크바를 침공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처럼 신사년에는 과분한 목소리로, 들뜬 목소리로 세상을 속이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결과 민중이 고통을 겪었다. 올해는 누가 어떤 말을 해서 국민을 웃기고 울릴지, <토정비결> 감상에 들어가자.

1. 김대중 대통령

절대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움직임은 온 국민이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 물면 놓지 않고, 끝내 해결하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는 그의 캐릭터로서는 더 좋을 수 없는 괘가 나왔다. 한 가지 두려운 것은 정도를 벗어나는 순간 대운과 세운에 깔려 있는 사해충(巳亥沖)이란 함정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70대에 맞이한 이 사해충으로 대통령도 되고 노벨상도 받았지만, 앞으로도 또 그만한 진폭의 큰 변화가 있을 수 있으므로, 대통령 자신이 늘 말하는 대로 정도(正道)를 가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이 무서운 게 아니라 국민이 무섭다.(733 有變化之象)
고기가 용으로 변하니 그 조화가 무궁하다.
여름 석 달 운수는 소망이 여의(如意)하다.
가을 석 달 운수는 식록(食祿)이 끊이지 않는다.
구름 속의 용과 바람 속의 범이 각각 그 유(類)를 쫓는다. 성 마루에 봄이 오니 온갖 꽃이 피어난다.
쌍을 이룬 흰 갈매기가 스스로 가고 스스로 온다.

2. 김종필·자민련 당주(黨主)

20세기 한국사의 절반을 줄곧 2인자로 있었으면서 딱 부러지게 기록할 만한 업적이 없는 인물,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에는 현대사의 스토커 같은 인상을 비치는 김종필 씨는 보여드리기 민망한 괘가 나왔다.
흐트러지지 않는 집념, 그러면서 매사 끈질긴 김종필 씨는 그의 부적절한 파트너였던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에 이어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다. 그러니 이제는 더 몽니 부리지 말고, 그의 소원대로 붉은 노을을 흩뿌리면서 지는 해가 되고 싶다면 순명(順命) 두 자를 붙들고 있어야만 하겠다. 한 해가 가는 엄동설한이나 해진 저녁에 씨 뿌리는 농부는 없지 않은가.(521 有不平和之意)싸움에 패한 장수가 면목없는 얼굴로 강을 건넌다.
집안에 불안이 떠나지 않으니 가족들이 서로 다툰다.
횡액수(橫厄數)가 있으니 모든 일을 조심해서 하라.
낙양(洛陽)으로 시집간 여자가 정부(情夫)를 따라 달아난다. 차가운 나무에 꽃이 피었으되 그 본말(本末)이 모두 약하고, 용이 여의주를
잃었으니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3. 김영삼 ·전 대통령 겸 자칭 영남 맹주

보여드리기 미안한 괘다. 아니, 전직 대통령으로서, 이 나라의 어른으로서 이따금 한 마디 덕담이나 던지는 노정객으로서 처신한다면 이따위 괘는 문제가 아니리라. 문제는 밑져봤자 손해볼 게 없는 그의 안타까운 처지에 있다. 더 이상 떨어질 나락도 없고, 더 구길 체면도 명예도 없다보니 자꾸 무리가 따른다. 그걸 토정이 경계하는 듯하다.(232 進退兩難之意)
밤에 범을 만나니 나아가지도 못하고 물러서지도 못한다. 일에 막힘이 많으니 심력(心力)만 허비한다.
망령되게 행동하면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끝맺지 못한 일이 있거든 산옹(山翁)에게 물어보아라.
산에 아홉 갈래 길을 내는데 한 번 실수로 공이 무너진다. 이지러진 달이 반쯤 차고 가을 꿈이 봄에 든다.

4. 이회창·한나라당 총재

세기의 벽두부터 여야의 격돌이 심상치 않다. 원래 쇠와 쇠, 돌과 돌이 부딪치면 깨지기 마련이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이회창 총재나 한번 길을 정하면 앞에 바위가 있든 거목이 있든 무조건 달려나가는 멧돼지 같은 특성을 가진 분들이다. 저돌(猪突)이 그런 말인데, 두 멧돼지가 상대를 향해 뾰죽한 코를 높이 치켜세우고 달려든다고 가정해 보자. 이 그림만으로도 위험한데, 문제는 두 분만 세상에 독존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회창 총재도 사해충(巳亥沖) 대격변을 맞는 시기이기 때문에 변화는 엉뚱한 데서 일어날 수 있다. 어쨌든 좋은 괘가 나왔다.(362 事有亨通之意)
태평한 잔치에서 군신(君臣)이 함께 즐긴다.
봉황이 붉은 조서(詔書)를 머금었으니 태을귀인(太乙貴人)이 임하리라.
십릿길 길가에 관인(官人)이 말을 버린다.
길고 긴 강물에 돛을 올리니 순풍이 불어온다.
임금이 어질고 신하가 일에 밝으니 오호라, 태평성국이로다.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 나오니 그 경색(景色)이 다시 새롭다.

글·이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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