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땅 산천을 따라 무수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사실여부를 떠나 흥미를 자아내고 그 시대의 사회성까지 갖게 되는 구비전승은 소중한 우리의 문화자산이기도 하다. 앞으로 대표적인 용인의 전설을 용인향토문화연구소 이인영 소장이 시대에 맞도록 각색해 매월 1회씩 연재한다. /편집자주

산다는 문제.
이것을 거론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주제넘은 일이고 골치 아픈 일이므로 그냥 접어두고 사는 편이 훨씬 배짱편한 일이다. 어차피 살다가 죽게 되어 있는 것이 신의 섭리이고 대자연의 법칙이라면 뉘라서 이를 거역할 수 있겠는가?

이세상 수십억 인구에게 조금씩 배당된 자기 몫만큼의 삶을 살다가 가게끔 되어 있는 시한부 인생들이 곤댓짖을 해 보았댔자 구정물통 속의 장구벌레 신세보다 나을게 뭐가 있는가? 그러나 인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천백년이나 살 것처럼 명예, 지위, 부귀, 권위, 뭐 이런따위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아귀다툼을 하지만 그것도 코로 숨이통할 때의 이야기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것이 우주의 영속성에 비유한다면 모든 것이 일장의 춘몽이고 찰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천하일색 이라던 양귀비를 비롯해서 아황, 여녕, 을서시 하며 역발산 기개세하던 향우장사도 염라대왕의 호출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삼천갑자를 햇수로 따진다면 무려 18만년이나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살았다는 얘기를 필설로 옮긴다는 것도 덜떨어진 소리 삼척동자에게도 먹혀들지 않을 뻔한 공갈(?)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던 이 사람은 해학적 기질과 유머감각이 풍부했던 한무제때의 실존 인물로서 일찌기 우리나라를 다녀가서 지었다는 동방신이기라는 저서까지 남겼다고 한다.

좌우간 이처럼 진절넌덜머리가 나도록 살았다는 동방삭이도 염라대왕이 보낸 저승사자를 피해 다녔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인간들의 생에 대한 애착은 이처럼 끈질기고도 집요하고 악착같으며 치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동방삭이가 삼천갑자의 마지막날 저승사자에게 잡혀 간 곳이 우리 경기도 용인의 탄천이었기 때문에 그 사건의 전말을 옮기고자 하는 것이다.

어느날, 저승사자가 동방삭이를 잡으로 처음 왔을 때였다. 동방삭이는 “내 운명은 아직 구만리 장천 같은데 어찌하여 벌써 날 잡으러 왔소이까?”라고 반문한다. “염라대왕 청문부에 기록되어 있는대로에 네 명운의 기한은 오늘로 마지막이기 때문이니라”

“어허 당신네들의 기한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오? 내 저승에 있을때 옥황상제로부터 크게 상을 받고 삼천갑자의 수명을 누리도록 특전을 받았는바 하물며 염라대왕 따위가 이를 어찌알고 감히 날 데리러 보냈다는 거요.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여생 십칠만구천구백사십년에 대한 보상은 어찌할 것이며 일을 잘못 처리한 당신들의 죄과는 어찌 하겠다는거요. 내야 저승에 있으나 이승에 있으나 매일 한 가지 이거니와 만일 일이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알고도 날 잡아간다면 그때는 염라대왕은 물론 그 대역시단죄 될 것이 뻔하지 않소. 그러니 다시가서 잘 알아본 후에 처리하여도 늦지는 않을 터이나… 어떻게 하겠소. 내가 지금 가야 되겠소. 말아야 되겠소?”

“어! 그런일이 있었는가?” “나 같은 사자야 시키는대로 할 뿐이지 뭐 아는게 있겠는가? 그럼 내 곧 가서 다시 알아 본 후에 또 옴세. 뭐 섭하게 생각할 것까지야 있나. 참게”

대개의 인간들이란 저승사자를 보면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삶은 파죽이 되는 것이 상례인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당당하게 큰 소리를 치는 것을 보면 뭔가 있기는 있는 모양 같았다. 때문에 저승사자는 그대로 발거름을 돌리고 말았다.

천상에서의 1각은 이승의 일백년과 맞먹는 세월이라니 동방삭이는 그동안 마음놓고 살수 있지 않았던가? 저승사자는 동방삭의 문적을 다시 찾아 확인해 보았으나 틀림없이 기한이 60년 밖에 되지를 않았다.

“이거봐? 분명히 60년 밖에 않되잖아?” 저승사자는 부랴부랴 동방삭이를 다시 잡으러 내려왔다.
“동방삭! 자네의 명운은 60년이 틀림 없었네 어서 가세나”
“어허, 이처럼 앞뒤가 막혀서야 원 내 전에도 말했지만 옥황상제께서 내게 베푸신 친은을 확인했소이까?”
“아니 그것까지는 확인을 못해왔네”
“그럼 무엇을 확인했소이까?”
“그야 인간들의 생명록 아닌갚
“생명록이 아직 고쳐지지 않았다면 저승에 있는 녹사는 밥먹고 무엇을 했다는 거요? 천상의 기록이 그 지경이라면 옥황상제의 은전도 허사가 아니겠소. 제 말이 정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럼 이것을 보시오”라면서 웃옷을 훌떡 벗고 등을 보인다.
“이것이 그 증거외다. 상제께서는 필시 오늘과 같은 불찰이 있을 것을 염려하시어 이렇게 옥쇄까지 찍어 주지를 않았소”하고 등창 앓았던 흉터를 보여 주었다.
“이것이 옥황상제의 인이란 말인가?”
“아니 저승사자가 옥황상제의 인을 모른다는 거요?”
저승사자가 옥황상제의 인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조차 분간을 못하자 동방삭이는 “그럼 되었소이다. 이것으로 증거는 충분한 즉, 염라대왕께 본대로 복명하시면 될 것이고 그도 믿기지 않으시다면 직접 상제께 조회하여 보시면 될 일이 아니오이까?”
“알겠네. 그럼 다시 확인해 본 후 또 옴세”

천상이나 지상이나 고위층 팔아먹는 수법은 통했다는 말인가? 이 통한다는 것도 어둠속의 허상일뿐. 위증, 공갈, 사기로써 저승의 순진한 사자를 농락하고 공무집행을 방해한 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으니 이 무서운 업보를 장차 어지 감당할 것인가?
세상에 죄짓고 마음편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동방삭이도 속일만큼 속였고, 또 더 속일 재간이 떠오르지 않았으므로 장차 닥쳐올 처벌이 두려워 종적을 감추었다.

한번도 아니고 두세번씩이나 헛거름을 시키고서도, 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고 용서받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채 슬그머니 종적을 감추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괘씸하고 야속하고 얄밉고 싹수없는 놈팽이의 소행이란 말인가! 저승사자는 와신상담, 이를 갈고 치를 떨었지만, 그러나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종적을 찾을 수 없는데다가 이 친구가 삼천갑자의 인생을 사는 동안 구미호가 다 되어 천상의 이치 까지도 빤히 점칠 수 있었을 뿐만아니라 변신술까지 능통하여 용케도 수사망을 피해 다녔다.

첩보에 의하면, 동방삭은 동방의 금수강산 쪽으로 잠적했다는 것이었다.

한편, 동방삭은 도망하여 이곳저곳 살피던 중 ‘생거진천하고 사거용인하라'고 하는 곳이 있음을 발견하고 손뼉을 쳤다. “그렇지, 저승사자가 날 잡으로 와 봤댔자 생거진천 쪽에 수사력을 집중할게 아닌가? 또 이곳은 안성마춤의 이웃 고을인 것만 보아도 사거용인 쪽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고도 당연한 처사이다.” 합동 민완사자팀이 작전 상황도를 펴놓고 회의를 한다.

“이것 보시오. 동방삭이가 숨어 있을 곳은 진천 아니면 용인일 것 같소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자고로 이곳 두 지점은 서로 떨어져 있기는 하나 생거진천하고 사거용인하라는 말로써 관련짓고 있오이다. 이 말대로 따르자면 진천쪽에 있을 것이나, 간교하기가 백여우에 증조부뻘되는 자리도 마다할 동방삭이고 보면 필시 그 반대쪽을 택했을 것이 틀림없소이다. 게다가 진천땅은 대개 평탄하나 용인은 산세가 그윽하고 경계 또한 아름답기로 정평이 있으며, 지형이 금계포란지상이니 명당자리가 많기로도 천하에선 으뜸이외다. 장차는 복부인들의 투기바람이 예상되는 곳일 뿐만아니라 분당, 일산, 신도시 개발 산업지구와 인접하였으니 이곳에 연고권을 확보해 두고자 했을 것이요. 또 숨어 있는자는 늘 도망갈 것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인간들의 공통된 심리인즉, 이곳 지리를 살펴보면, 용인 석성산 서북쪽과 광교산 고분재쪽, 그리고 서봉사쪽에서 시작되는 하천이 머흔내에서 합쳐지고 다시 한강의 강동과 강남 사이를 흘러 한강으로 들어가서 황해로 나오게 되어 있지 않소이까? 숨기도 안성마춤 인데다가 여차즉하면 수로를 따라 안남국이나 유구국 쪽으로 빠져 나갈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소이다”

지능계 민완사자의 판단이 이처럼 적중하여 수사망은 압축 되었으나 이들이 가지고 온 동방삭의 몽타주는 이미 십팔만년 전에 발급한 이승출생 증명서 대장에 복제한 것이니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자 지금과 같은 저승사자의 정복차림 상태로선 놈의 검거가 어려울 것 같으오. 그러니 이승의 인간으로 변신하여 족적수사는 물론 우범지역과 취약지를 비롯한 심야 유흥업소, 골프장, 콘도미디엄, 여관 등에 대한 검문 검색과 잠복근무에 완벽을 기하시오”
이렇듯 백방으로 물샐틈없는 저인망 수사를 펼쳤으나 단서하나 잡지 못해 범인 검거는 미궁에 빠져들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구중에 반장격의 사자는 “그렇지... 내가 왜 이토록 아둔하단 말인가! 역시 지능범은 지능으로 맞서야 하는거라구” 기발한 아이디어를 착상한 것이었다.

사자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개울에서 숯을 닦았다.
춘삼월 호시절 때에 동방삭은 양유청청한 산수간을 거닐면서 중장통의 낙지론을 읊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푸른 숲의 냇물이 맑거나 푸르러야 하는데, 시꺼먼 먹물이 흐르지 않는가?
“거참 괴이한 일이로다. 내 일찍이 황하수가 흐르는 것을 보았으되 흑수가 흐르는 것은 보도 듣도 못한 일 어찌된 이치인가?”
이것이 궁금하여 상류로 올라가 본즉 좀 모자라게 생겨먹은 친구가 물에 숯을 닦고 있는 것이다.
“오라. 냇물이 꺼멓던 것은 그대 탓이구료. 헌데 댁에선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오?”
“예 보시다시피 숯을 닦고 있습지요”
“숯을 닦아? 왜?”
“옷이 더러워 지면 빨래하는 이치와 한가지외다. 아무리 검다한들 이렇듯 닦고 보면 언젠가는 희게 될 것 아니겠소?”
“허어, 허어, 허어 내 삼천갑자를 산 사람이오만 숯을 씻는 위인을 보기로는 당신이 처음이오”
“옛! 그러시다면 당신이 동방삭이외까?”
“그렇다지 않았소. 금생에서야 나만큼 오래 산 사람도 없으려니와 견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와 비교될 사람이 천하에 어찌 또 있겠소. 역시 사람은 오래 살아놓고 볼 일이야. 허어허어허어”

그날 저녁 천상에서는 빅 뉴스가 터졌다.
영상장치에서는 저승사자를 농락하여 십팔만년이나 부당 생명을 누린 동방삭의 죄상, 도피행각, 검거 경위가 소상하게 비춰졌고, 이를 검거했다는 저승사자들이 일계급 특진되었다는 기사가 사회면을 뒤덮었다. 동방삭이는 비밀재판에 회부되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알려진게 없지만 그날 이후 동방삭이가 잡혀간 용인의 하천을 사람들은 숯내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것을 의역하여 탄천이라 하였으며 동방삭을 검거한 용인은 저승에 있는 모든 혼령들까지도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다고 전한다.

/글 이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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