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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의 백년대계 현장

아이들이 사라졌다. 30년 반동안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는지조차 인식되지 못했던 소학교, 구성면 동진원분교가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춘다. 필자는 그래도 교육기관으로서 30년생의 조명이 필요하다 싶었다. 우선 교육청을 방문해 자료를 요청했으나 마땅한 답을 얻지 못했다.
다음은 동진원 분교를 담당하는 어정초등학교를 찾았다. 양건 교장을 만났지만 자료는 역시
없었다. 그나마 동진원 분교연혁과 최근의 동진원학교에 대한 약간의 설명만 얻어 들었다.
"동진원 분교와 관련되 자료사진이나 구체적 학교사에 관련된 자료는 없나요?" "아마 없을 겁니
다" 아쉽지만 동네 사람들과 곳곳에 약식으로 남아있는 자료만을 종합해 본다.

용인중심가 42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삼가동에서 어정으로 갈리는 진입로가 나온다. 아마 용
인시민이라면 이 길을 통해 동진원 가구단지를 몇번쯤은 스치거나 이용해 봤을테다.
동진원분교는 가구단지내에 있는 소학교다. 가구단지 끝즈음에 오른쪽 샛길을 따라가면 유치원
크기만한 아담한 건물을 만날 수 있다.

교문을 들어서니 용인교육청이 공고한 패교행정예고 안내문이 먼저 눈이 들어온다. 그 뒤로 낡
을대로 낡은 이승복 동상, 교실동 앞에는 이 학교의 유일한 장식품인 석고상이 놓여있다.

동진원 분교는 당초 2002년 3월 폐교에정이었으나 올초 3명 남아있던 학생들이 전부 전학감으로
써 본격적 폐교일정에 돌입했다.

동진원 분교의 역사는 구성면의 역사와 함께한다. 52년 5월 중3리에 음성나환자촌이 들어서면서
이들의 자녀를 수용하기 위해 69년 단 두 개의 교실로 문을 열었다. 현재의 학교동은 70년 7월에 설립된 건물이다.

비슷한 시기에 수지 동천리에서도 같은 목적으로 염광원분교가 개교했다. 염광원분교는 이미 96
년 9월 폐교돼 마을회관으로 이용중이다.

음성나환자들이었지만 마을의 반대가 심해 인근에 어정초등학교를 두고도 따로 수업을 받아야
했다. 교실이 두 개뿐인지라 모든 수업은 복식수업이었다. 운동회나 소풍도 따라 없었다. 어느 학교에든지 있게 마련인 교화, 교목, 교장도 없었다. 교사 1명에 학생 10명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청년회의소와 자매결연을 맺은 뒤에는 운동회와 여러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래도 75년,76년 두해동안 18명의 졸업생이 배출됐다. 그러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일반인과 다름없는 아이들 이었지만 나환자 자녀 학교를 나왔다는 선입견을 피해 6학년이 되기
전에 서둘러 타학교로 전학을 갔다. 10여명의 학생들은 늘어나지 못하고 96년에 이르러서는 14명,97년 9명, 98년 4명, 올해초 3명으로 점차 즐었다.
동진원 분교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교사와 학생간에 1대 1로 진행되던 맨투맨 수업이다. 콩나물 시루같은 교실에서 획일적 수업을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나환자촌 자녀 수용시설이라는 콤플렉스만 없었다면 우리나라 교육이 지향해야 할 수업방식이
이곳에서 먼저 시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별지도를 통한 특성교육, 최근 교육부가 권장하고 있는 교수방법이기도 하다.
최근 소규모 학교 통폐합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다. 경제논리와 교육을 동일취급하는 것에 대
한 반대다.

동진원분교를 물론, 이들 소학교와 100%같은 처지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반쪽짜리 교육기관
이 우리에게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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